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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Aug 06. 2020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게스트 하우스 사장이 되는 게 꿈이다. 내 집을 정거장 삼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조르바의 할아버지는 마을에 여행자가 오면 그 사람을 집으로 초대한 후 식사를 대접하고 음식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한다.      


  여행자의 이야기에는 허풍이 좀 실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괜찮다고 생각한다. 기억이란 언제나 정확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알록달록한 거짓말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하나 보다.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는 마흔이 넘은 사람은 받지 않는다는 안내 표지가 있었다. 주인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 나이가 되면 불평이 많아요."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하는 것은 저렴하기 때문이다. 침대 하나만 빌리는 거니까. 그런데 그 이상을 요구한다고 한다. 요구하면 안 되는데 불평을 한다고 한다. 

  "이상해요. 예약 사이트를 보면 가격이 높을수록 별점이 높아요. 가격이 낮을수록 별점이 낮은데 가격이 낮은 호텔에 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알면서 왔는데 불평을 쏟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 묶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침대 하나를 빌리는 게스트 하우스가 아니라 테라스가 딸린 방을 하나 빌리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사진을 보니 마음에 들었다. 그쪽에서 답이 왔다. 

  "이틀에 한 번은 꽃에 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꽃을 돌 볼 사람을 찾는 거 같았다. 마음에 들었다. 1년에 며칠은 그렇게 살아도 좋을 듯싶었다.      


  소피아에 간 적이 있다. 갈 예정이 없었는데 가게 되었다. 이스탄불에서 택시기사에게 호되게 당했다. 디라스는 터키가 싫다고 했다. 터키의 동부를 여행할까 했는데 소피아로 발길을 돌렸다. 이스탄불에서 플로브디프로 가는 야간 버스를 기다리면서 디라스는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너무 슬프다고 나를 쳐다봤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흑인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좁은 대합실. 나는 디라스가 슬프기 때문에 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서워서 울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당한 일 때문에 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울고 있었다. 그곳이 너무 낯설어 울고 싶었던 것이다. 책을 핑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소피아에는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다. 용케 그곳을 찾아가 며칠 머물렀다. 거긴 오래된 책들이 많았는데 과거에 융성했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외국인 전형으로 특례 입학을 하기 위해 불가리아로 유학을 오던 때가 있었어요. 영국 같은 곳은 비싸니까. 여기로 보내는 거죠. 학생들의 보모 역할을 했어요."

  붐이 사라지자 손님이 끊겼다.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 보니 과거 이곳을 여행하는 방법이 적힌 책이었다.   

  15일을 머문다면 15일치 정해진 만큼의 돈을 강제로 환전해야 했다. 이곳 사람들과 간단한 회화를 나눌 수 있는 다이얼로그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디라스는 웃음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몇 살이세요."

  "서른 살입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무척 동안이시군요."     


  나는 그곳에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북한에서 4명의 사람들이 유학을 온 적이 있다. 그들은 김일성에 대한 비판을 한 후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북한공작원들한테 잡혀 공항까지 갔다가 탈출하기도 했다. 탈출을 도왔던 사람 중 한 명이 나중에 불가리아의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그 분이 4명에게 국적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2명은 남한을 2명은 불가리아를 택했다. 불가리아를 선택한 사람들은 나중에 고향에 돌아갈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들은 김일성을 비판한 거지 조국을 미워한 건 아니라고. 남한을 선택한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야 했다.   

  그 중 한 분이 불가리아의 소설가와 결혼했다. 할머니는 그 집에 봉사활동을 다녔다. 거동이 불편한 분을 위한 봉사활동이었다. 아내는 병치레가 많았고 오래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다.    집에는 아내가 읽던 책들이 많았는데 하루는 할머니가 제안을 했다. 

  "이제 이런 것은 좀 정리를 하셔야 할 거 같아요. 원하신다면 제가 정리를 해드릴게요."

  "원하지 않습니다. 모두 아내의 손길이 간 거예요."

  "아내분이 오래 앓아누워 있다 보면 남편이 딴 생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오래 아내를 돌보신 거예요?"

  "젊었을 때 저는 도망자의 신세였어요. 제 곁에 늘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어느 날 봉사를 가보았더니 할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있었다. 목욕을 하다가 그대로 돌아가신 거였다. 

  네 분은 '고향의 봄'을 잘 불렀다. 동지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등졌을 때도 묘지에서 불렀던 노래는 '고향의 봄'이었다. 그 다음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망명객이 돌아가셨을 때는 누가 '고향의 봄'을 불렀는지 알 수 없다.      


  언젠가 나는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이 될 것이다. 조르바의 할아버지처럼 좋은 식사를 대접할 것이다. 밥값은 이야기로 받을 생각이다. 지금도 우리 집은 게스트 하우스라 할 수 있다. 고양이들의 게스트 하우스인 것이다. 다림이가 지나갔고, 렛트가 머물다 갈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화장실을 치우고 정리하고 손님이 흩트리고 떠난 구겨진 매트리스를 빨고 말려서 다시 펴듯이 렛트가 발로 차낸 모래들을 정성껏 쓸어 담는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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