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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Aug 06. 2020

내가 더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끼리 

  평등한 걸 보았나      


  거긴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과 

  더 사랑하는 사람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더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일기장에 적었다. 사람들은 평등한 걸 좋아하는데 그런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좋아하는 연인 사이이거나 부부 사이이거나 양팔 저울에 서로를 올려놓고 보면 무거운 곳이  있다. 

  오늘 렛트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뒤쪽 베란다 문을 열어 놓았는데 렛트가 거기로 점핑해 들어갔다. 거긴 쓰레기 분리수거 통이 있고, 세탁기가 있었다.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들. 

  디라스는 문 쪽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놀라는 티를 내었다.      


  "내가 이걸 받쳐 놓았는데 이걸 넘었네!"     


  나는 놀라지 않았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렛트는 자기 몸보다 긴 곳까지 뛰어 올라갈 줄 안다. 작다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용수철처럼 몸을 움츠렸다가 짝 펴서 뒤발을 차면 의자 높이까지도 쉽게 올라간다. 그래서 내 의자 하나를 캣타워처럼 사용하고 있다. 괘심해서 그걸 핑글 돌렸더니 어지러운지 뛰어 내렸다. 그리고 휘청. 아마 땅이 잠시 돌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 다시 임시 캣타워로 올라간다. 거기서 잠을 잔다. 퇴근하면 거기 있다. 내가 티비를 볼 때도 거기 올라가 있다. 나는 또 의자를 빙글 돌리고 만다.   


  더러워질까봐 거기서 렛트를 끄집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속전속결. 일을 처리할 때 내가 원하는 바인데 그것 때문에 낭패를 볼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잽싸게 렛트에게 뛰어가자 나를 본 렛트가 잽싸게 세탁기 뒤로 숨어버렸다.     

 

  "아 거긴 더러운데."

  디라스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거긴 몇 년 동안 청소를 한 기억이 없는 곳이었다.      


  나는 실패하고 나왔다. 근데 렛트도 우울한 내 그림자를 따라서 나왔다. 우리는 서로 원위치에 도달했다. 다시 한 번 나는 렛트에게 뛰어갔다. 렛트가 다시 세탁기 뒤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원위치로 갔다. 올림픽 대회 출전을 위해 연습을 하는 운동선수들 같았다. 다시 한 번 렛트에게로 달렸다. 렛트도 세탁기 뒤로 점핑하였다. 나는 뒷발 하나를 잡았다. 놓으라고 렛트가 발버둥을 쳤다. 뼈가 느껴지는 다리였다. 굴곡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렛트가 다칠까봐 나는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끄집어냈다. 당겨오지 않으려고 하는 힘이 커서 다칠 것 같아 다리를 놓아 주었는데 뒷다리로 내 손바닥을 힘차게 밟은 다음 튀어 올랐다. 그때 따끔한 느낌이 났다. 살펴보니 손바닥 두둑한 곳이 파이어 피가 나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칠 수도 있고 피가 날 수도 있으니까. 이상하게 디라스와 살고 나서 부터 몸에 상처가 나면 흉이 질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렛트가 남긴 흉이라면 나중에 충분히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기억으로 남을 거니까. 

  내 손을 보고 디라스가 렛트한테 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 오냐오냐 해줬더니, 카렌의 손에서 피를 흘리게 해. 너랑 안 놀아. 저리 가."     


  디라스가 내 편을 들고 있었다. 안 놀지 않겠지만 내 마음은 충분히 따뜻해졌다. 별 거 아닌 일로 나는 디라스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렛트와 나 둘이서 시소를 타면 디라스가 내 쪽에 와서 앉을 것 같았다. 우린 힘껏 렛트를 공중으로 올린 다음 메롱, 무섭지, 어지럽지 하고 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디라스가 우선 대일밴드를 붙여 주었다.      


  "후시딘은 찾아서 내가 발라줄 게."     


  나는 기다렸다. 디라스가 후시딘을 짜서 검지로 옮긴 다음 내 손바닥의 두터운 부분을 부드럽게 약으로 색칠할 것을.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디라스는 그것을 잊고 쿨쿨 잠이 들었다. 디라스, 하고 불렀는데도 꿈나라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깨워서 네가 무엇을 잊고 잠이 들었는지 알려주려고 하다가 겨우 그런 걸로 깨웠냐고 할까봐 확인하지 않는다. 나라면 잊지 않았을 것을 디라스가 잊고 잠이 들었다. 나와 디라스가 시소를 타면 분명 한쪽으로 기울 것이다.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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