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님 Jul 18. 2024

설렘과 두려움은 한 끗 차이

긴 비행의 끝, 새로운 시작 

아무리 해도 시원해지지 않는 기지개를 또 한 번 켰다. 이제 좀 땅에서 걷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14시간 비행은 정말 곤욕이다. '승객 여러분, 자리에 착석하신 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안내 방송이 들리고, 비행기가 착륙하기 시작한다. 


착륙할 때 가슴속에 드는 약간의 울렁거림은 설렘 탓인 듯하다. 그 순간, 대학에서 원어민 교수님과 함께한 수업들이 떠올랐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 야심 차게 들어왔지만, 영어를 쓸 때마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이에 아예 영어만 쓰는 환경에 내던져지자는 마음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던 미국 인턴십을 대학교 3학년 때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그리던 땅을 밟고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뉴욕의 JFK 공항에서 캐리어를 찾고 있을 때, 직원으로 보이는 흑인 남성이 다가왔다. 도움을 주려는 것 같았지만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영어를 할 준비가 안된 나는 '죄송해요. 아직은 영어 하기 두렵네요.'라는 미안한 마음을 담은 눈을 최대한 보내며 "I'm fine"만 연신 외쳐댔다.


내 키만 한 캐리어 두 개, 작은 캐리어 하나, 몸통만 한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야무지게 크로스백까지 두른 뒤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공항 출구를 찾아 나선다. 머릿속으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제 이 아기 펭귄은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부모와 떨어지고, 무리에서 이탈한 이 펭귄의 여정은 앞으로 험난해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 출국을 세 달 정도 앞두고 갑자기 자기도 같이 미국을 가겠다며 함께 온 친구가 하나 있다. 옆에서 함께 뒤뚱거리는 친구와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다.


저 멀리서 우리의 구세주가 보인다. 일 년 전부터 뉴욕에서 지내던 선배 자몽이 마중을 나왔다. '선배, 잘 지내셨어요! 얼마 만이에요, 이게!' 선배랑은 대학교 1학년 때 학생회에서 알게 된 사이지만 그리 친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니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것처럼 반가움이 넘친다. 왠지 모를 안도감도 든다. 선배는 척척 우버를 부르더니 공항 길도 척척 찾아 나선다. 우리는 연신 물개 박수를 치며 뒤뚱거리며 선배 발자국을 따라나선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데, 뻥 뚫린 도로가 묘한 위화감을 준다. 한국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면서도 표지판 곳곳에 적힌 영어는 내가 미국에 왔다는 실감을 준다. 오늘따라 하늘이 더 맑아 보인다.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는 법이다. 시원한 공기가 코 안 가득 들어와 머릿속을 상쾌하게 채운다.


설렘과 두려움은 공존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여정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부모님과 친구들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공항에 데려다주고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시큰해졌다. 그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가족 없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낯선 땅에서 20년간 익숙했던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해야 할 때, 가슴속 이 두근거림이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혼란스러웠다.


두 감정은 정반대라고 생각했지만, 마치 같은 사진 장면에서 채도만 다르게 조절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장면 속 새로운 경험과 도전에 대한 기대감이 한쪽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다른 쪽에 있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을 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첫날, 처음으로 집에서 나와 독립해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느꼈던 그 낯선 두근거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때도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졌고, 결국 그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도 그렇게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으며 숙소를 향해 간다.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안고, 앞으로의 여정을 기대하며.




 







목요일 연재
이전 01화 '뉴요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