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een 나봄 Jul 21. 2023

나를 미워하는 '당신'에게 차라리 꽃을 바치겠습니다

feat. 어쩌다 6개월 휴직을 하게 됐습니다만

“회원님, 조금만 더 버텨봐요!”



심장박동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온몸을 강타했다. 

강한 음파의 타격감에 파르르 전신이 전율했다. 



짙은 암막 커튼이 눈 아래로 드리워지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방음벽에 가로막힌 것마냥 웅웅거렸다. 오로지 내 앞에 보이는 것은 발작적으로 커져가는, 시뻘건 고동 소리뿐이었다. 




출처: pixabay





쿵쿵-쿵.

엇박으로 뛰어나가는 신체의 한 파편으로 인해 발끝에 검푸른 장막이 펼쳐진다. 발 아래에서 서글프게 빛나는 별무리에 뛰었던 파편이 산산히 조각나며 러닝머신 위에서 똑같이 흩어졌다.




출처: pixabay




두렵다. 

고개를 들어올리니 유리창 너머로 파리한 얼굴이 비춰진다. 달달 떨리는 입술을 긁어모아 깨물었다. 옆에 누군가가 없었다면 두 귀를 틀어막고 싶다. 




고민이 많을 거야. 

지금 이 노래를 듣는 순간조차도. 

남들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깎아 내리고, 

틀리진 않았는지 정말 확신할 수 있는지.

- 그저 널 사랑해주면 돼(조주현)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러나 찬란히 부서졌던 파편이 다시 한 데 뭉쳐 나를 옭아맨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가느다란 발목을 칭칭 감아 이도저도 하지 못하도록 끌어내리고 있다.



쾅쾅 부딪쳐오는 심장 소리를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급히 러닝머신에서 내려온다. 가파르게 옥죄여 오는 폐에 산소를 들이붓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러닝머신을 부여잡는다. 점점 호흡이 고르게 변하고, 정신이 들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러닝머신 위에서 음악을 들으며 경쾌하게 뛰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출처 : pixabay




순간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인두로 지진 것마냥 뜨거운 안압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각자의 삶을 속도감 있게 질주하는 사람들 곁에서,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가 무서워서 5분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6개월 동안 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반적인 직장인이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휴직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경우는 잘 없다. 




휴직 직전에 벌어들인 금액이걸 포기하기 정말 쉽지 않았다




8년 동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서 일하며 1000명을 가르치고, 한때 부업으로 월 500만 원을 벌었던 나 역시 기본적으로 직장인이기 때문에 6개월 동안 휴직을 하겠다는 선택을 하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휴직을 선택했나요?"




<내 삶에 gap-year를 주기 위해서>이다.

30여년 동안 앞만 보며 전력질주했다가 생각하지 못한 돌부리에 넘어졌다. 달리기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전력질주하다가 넘어지면 그냥 걷다가 넘어지는 것보다 훨씬 크게 다친다는 걸. 그리고 그 상처가 보통의 상처보다 훨씬 쓰라리다는 것을. 





휴직하기 전부터 이미 두 차례 쓰러져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                                




2023년 2월.

2월은 매우 불안정했다. 

밤마다 악몽을 꾸며 바들바들 떠는 딸을 끌어안고 숨죽여 울던 부모님. 

잠시라도 누나를 혼자 뒀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무서워 한 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 동생. 



집안끼리 15년 넘게 알고 지낸 의사 선생님께서 얼음장처럼 창백하게 질린, 단단하게 굳어버린 몸에 빼곡하게 침을 놓으며 첨언하셨다.  




"문지방에 찧이면 누구나 아파. 

하지만 그건 진짜 다친 건 아니야. 

순간 들어오는 데미지와 상처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해. 


당연히 힘든 일이 생기면 

마음이 아프고 힘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 스스로의 

가치가 깎인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넌 지금 아픈 거야. 

진짜 다쳐서 아무것도 못하는 건 아니야."




아플 때는 쉴 수도 있어. 

나봄아, 이젠 쉬어도 괜찮아. 





요양차 방문했던 송해 공원에서처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달릴 줄만 알았지 쉴 줄은 몰랐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확신이 없더라도 너의 갈 길을 가. 

네가 제일 행복할 선택을 해야 해. 

지금 걷는 그 길이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 봤을 때 너의 삶을 비춰줄 거야. 

-그저 널 사랑해주면 돼(조주현)




나 스스로에게 gap-year(영미권에서 흔히 고교 졸업 후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보내는 1년. 쉽게 말해 휴식 기간이다.)를 주기로 결정한 후 근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초반에는 너무나 두려웠다. 

지금 이렇게 쉬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쉬다가 도태되는 건 아닐까?




이 질문들에 대해 한 달 내내 곱씹었다.

그러다가 근본적인 질문이 머리 속에 불쑥 튀어나왔다. 도대체 <누구>와 경쟁하고 있길래 도태되는 거냐고.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생은 이런 내게 ‘누나는 가상의 적이랑 계속 전투 중이네. 도대체 그 전투는 언제 끝나는 거야?’라고 물었다.




세이노의 가르침에서는피보다 진하게 살라고 조언한다




2023년에 개정된 세이노의 가르침에서는 ‘가난을 일찍 경험한 사람들은 가난하였던 생활 수준이 출발점이었기에 그곳으로 언제라도 <되돌아가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세이노는 이런 사람들의 태도를 <제로점으로 돌아간다>라고 표현한다.    




나 역시 <제로점>으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8년 동안 1000명을 가르치던, 능숙한 선생님에서

새로운 것을 서툴게 배우고, 익히는 학생의 자리로. 




단 6개월 뿐이지만, 그 기간 동안 내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러나 내가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한 땀, 한 땀 소중하게 채워보는 거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찬찬히 기록해보고 싶었다. 









사는 동안 무수히도 

많은 금이 생겼습니다. 


마음의 잔금이 햇살에 찔린 물결만큼 

많지만 상처 입었다는 이유로 

망가지진 않으려 합니다. 


나를 강하게 하는 것도 약하게 

하는 것도 당신이 아닌 내 자신임을 

알기에 그럼에도 나를 미워하는 

당신에겐 차라리 꽃을 바치겠습니다.

<레지나레나-용서받지 못한 그대에게>




나는 진짜 강한 사람은 신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아파서,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삶을 굳건하게 지킬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꿀 힘을 가지고 있다. 




© bonniekdesign, 출처 Unsplash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자기 주위에 존재하는 자그마한 행복을 걸어가는 길에 하나, 둘 심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뒤를 돌아봤을 때 걸어온 길들에 소담하게 피어난 꽃들을 보며 미소 지을 줄 아는 사람.   





© sekatsky, 출처 Unsplash




때로는 거울 너머의, 미려하지 못한 '나'에게 너무나 화가 나서, 차마 분노를 누르지 못해 외면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보려 한다. 거울 너머의 '나'에게 찬찬히 팔을 뻗어보려 한다. 





© klimkin, 출처 Pixabay




"나를 미워하는 당신에게 

차라리 꽃을 바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