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우리 바다 보러 가자!”라고 외치는 순간 파란 바다가 눈앞에 있는 장면을 상상할 때가 있다. 사랑을 하면 낭만에 빠지고 계획적이었던 나도 즉흥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사장에 그와 나의 이름을 적고 나 잡아봐라 하며 달리는 흔한 이야기들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특별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해수욕장 개장 기간은 여름휴가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한낮에 물이 차 있고, 해가 질수록 방파제 끝까지 물이 밀려 들어와 해수욕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모래성을 만들고 엄마 아빠와 텐트 속에서 수박을 잘라먹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여름휴가를 20년 전 모습으로 돌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세월은 아무 곳에나 펼칠 수 있던 텐트를 지정된 캠핑장으로 바꿨고 바다 옆에 자리한 캠핑장이 휴가지로 정해졌다. 어린 시절 낭만과 추억에 빠진 결정이었다.
튜브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 틈으로 서서히 온몸을 적시며 들어갔다. 발이 닿지 않는 공포는 수심 2m에서 하는 강습으로 극복되었지만 멀리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이 땅에 닿는다는 것은 큰 안정감을 준다.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멈춰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다. 발 끝으로 땅을 느낄 수 있는 끝자락에서 수경을 쓰고 자신 있게 물속으로 얼굴을 푹 담그자마자, 바로 솟아오르고 말았다.
음식에 빠지지 않는 소금은 매일 같이 먹었지만 그토록 짜디짠 물이 입에 닿는 것은 처음 느꼈다. 바닷물이 바닷물인 이유는 소금물이기 때문이고 소금물로 염전을 만들고 염전에서 소금을 만든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해군 특수부대 SSU 다큐멘터리에서 수경에 물을 넣고 밥을 먹는 훈련을 본 적 있다. 수영을 배우지도 않고 해병대에 입대한 남동생이 마셨을 바닷물과 흘렸을 소금 같은 땀에 우리의 안위가 녹아있음이 감사했다.
수영을 못했을 시절, 바다는 그저 발만 담갔던 기억으로 채워져 있었다. 온몸 구석구석 달라붙은 모래는 털어내기 힘들다는 이유로 튜브에 떠 있는 것조차 주저하며 살았다. 그러다 수영을 배웠다는 이유로 바다에 처음 들어갈 수 있었다. 바다 수영은 담긴 물의 차이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맞바람을 뚫고 가는 자전거가 휘청거리고 더 많은 힘이 드는 것처럼 바다수영은 소금물과 더불어 파도라는 변수도 함께였다. 짠맛에 혀가 익숙해졌을 때쯤, 파도는 철썩철썩 얼굴 위로 물을 끼얹었다. 접영 하는 사람들 옆에서 자유형을 하는 것처럼, 물살을 뚫고 수영하는 것은 더 큰 체력소모를 유발했다. 꿈꿨던 바다수영은 금방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투명한 에메랄드 바다는 또 다르려나, 뿌연 서해바다의 물에 약간의 탓을 돌리며 다시 한번 바다수영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