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레인 끝에 서 있으면 종종 만화 둘리의 등장인물을 만난다. 그들의 공통점은 머리 위가 뾰족하게 솟아있는 사람들. 수영장에서 실리콘 수모를 쓴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지구 정복을 위해 꼴뚜기 별에서 온 꼴뚜기 왕자와 쫄병은 출신 별의 이름답게 머리가 뾰족하게 솟았다. 훤히 드러낸 이마에 겨우 걸쳐진 모자가 여차하면 벗겨질 것 같다. 수영장의 꼴뚜기 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그들은 자신의 출신 별이 달라진지도 모른 채 열심이다.
나 때문에 수영장에 처음 다니게 된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말했다. “근데 하다 보면 모자가 벗겨지려고 해 이거 왜 그러는 거야?” 나는 들어가기 전에 잘 씻냐고 물었다. 당연히 잘 씻는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그럼 이마를 더 빡빡 씻어야 된다고 말해주었다. 친한 친구 아니면 말하기 민망한 이야기였다. 그녀와 친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꽉 조이는 실리콘 수모는 그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머리 전체를 감싸는 소재이기에 유분에 민감하다. 머리는 천연 기름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부분이다. 젖은 머리카락과 이마의 유분이 물의 마찰력, 추진력에 밀려 실리콘 모자를 점점 위로 올린다. 그럼 나도 모르는 새 꼴뚜기 별 사람이 되어있었다.
처음엔 수영을 너무 열심히 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악동 샘이 아니었다면 나도 홍당무가 된 얼굴과 진하게 남은 수경 자국처럼 꼴뚜기가 된 내 모습을 보며 오늘도 열심히 했다고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첫 시간에 수영모자를 쓰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모자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미세한 선이 있어요. 그 선이 이마 가운데로 오도록 써야 합니다. 모자 끝이 눈썹 1-2cm 위에 오도록 쓰는 것이 가장 예쁜 위치예요. 모자가 벗겨지려고 하시면 이마와 머리를 더 깨끗하게 씻으셔야 합니다. 미끄러워서 밀려나는 거예요”
스타트하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꼴뚜기 별 사람이 되어있곤 한다. 아무리 빡빡 씻어도 미숙한 스타트로 인한 마찰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수경에 물이 들어가서 눈이 보이지 않고 코가 매운 상황에서도 눈썹 위 수모를 확인한다. 지구인이든 꼴뚜기 별이든 다 같은 우주인이지만 다시 돌아가야 할 별이 있는 사람보단 집과 친구가 있는 지구가 더 좋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