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킥판을 들고 발차기를 시작한다. 으슬으슬했던 몸도 한 바퀴, 두 바퀴만 돌면 수영을 시작할 수 있는 뜨거운 피가 된다. 몸이 뜨거워졌다는 것은 심박수가 올라갔음을 의미한다. 휴식기 평균 심박 수는 70을 유지한다. 살짝 긴장했을 때 100까지 올라가는데 발차기 한 바퀴만 돌아도 금방 120까지 오른다. 번갈아가며 움직이는 발의 속도만큼 심장도 빠르게 팔딱거린다.
기초반 수업은 발차기로 시작된다.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모두가 킥판을 들고 들어왔다. 줄이 길어지며 발차기 기차가 완성되었을 때쯤 악동 샘이 말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자유형을 해 볼 거예요. 다들 킥판 저한테 주세요”
손에 들린 킥판이 한데 모여 물 밖으로 꺼내졌다. 익숙했던 것 없이 맨몸으로 줄줄이 서서 멀뚱 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우리 킥판 잡고 자유형은 잘했잖아요! 오늘부터 진짜 수영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투명 킥판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하면 됩니다” 그의 말에 모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2번에 자리한 나는 뒷사람들에게 “먼저 가실래요?라고 말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그가 말했다. “에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세요! 다들 처음이라 무서운 건 똑같아요. 제가 한 분씩 잡아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텅 빈 느낌, 투명 킥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호흡을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온몸이 그대로 가라앉았고 수영장 물을 한 바가지 먹고 캑캑거리며 일어났다. 앞서 출발한 1번도 마찬가지였다. 콜록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이게 진짜 수영이었다. 맨몸을 물에 띄우는 일.
킥판 없이 두 번도 채 가지 못하고 일어났다. 발차기도, 호흡도, 팔 돌리기도 모든 박자가 킥판의 부재로 꼬이고 꼬였다. 몸뚱이가 무거운 납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다시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자주 뒤를 쳐다보았다. 나 때문에 뒷사람들도 멈춰야만 했다.
앞에서 잡아주는 손을 너무 꼭 쥔 나머지 ”힘 빼세요! 이렇게 온몸에 힘을 주시면 계속 가라앉아요! “라는 그의 외침이 뒤늦게 들렸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공포감에,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나를 지탱해주었는지. 비로소, 존재하지 않을 때 깨닫게 되었다. 바다에 빠졌을 때 스티로폼 부표만 있어도 둥둥 뜨게 하는 생명줄이 되는 것처럼, 작은 것이 전체를 지탱하던 순간들.
무섭고 슬픈 마음은 눈물이 되었다. 이럴 때는 수영장이 물로 가득 차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옆 사람도 모두 눈에 물이 묻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킥판 없는 자유형을 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킥판과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