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엉덩이데이

by 유우주

스타트를 하는 날에는 왠지 민망해지곤 한다. 마치 엉덩이가 주인공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렬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스타트를 시작하는 앞사람 엉덩이가 눈앞에 있다. 엉덩이를 뒤로 쭉 내미는 만큼 대체로 멋진 스타트를 보여준다. 하늘로 솟아오른 엉덩이는 스타트의 기본자세다.


호루라기 소리가 유난히 많이 울리는 요일은 물속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리는 날이기도 하다. 왠지 길쭉하고 탄탄해 보이는 사람들이 빨개진 얼굴로 물 밖에서 매무새를 단정하고 있었다. 수경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한 명씩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장전된 총알 같었다. 온몸을 뾰족한 로켓처럼 만들고 포물선을 그리며 쏘옥 하고 손끝부터 입수했다. 그 옆에서 배영을 할 때면 강사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풍덩 소리와 함께 넘실거리는 물살이 얼굴 위를 쓸고 지나갔다. 물을 먹는 일이 잦았지만 레인 끝에 다다르면 그들을 관찰하기 바빴다.


오리발을 손에 쥔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오늘은 스타트를 배워볼 거예요. 다들 물 밖으로 나가세요” 강사님의 말 한마디에 모두 물에서 나왔다. 물속에서 50분을 보내는 것에 익숙했기에 물 밖에 서서 서로를 보는 것은 왠지 어색했다. 25m 레인에 20명의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한 사람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 끝으로 레인 끝을 잘 움켜쥐어야 했다. 10개의 발가락에 힘이 꽉 들어갔다. 급똥이 마려웠을 때 이후로 발가락이 오랜만에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괄약근의 조임이 느껴졌다.


“손을 머리 위로 모으고 무릎은 살짝 굽히면서 시선은 발 끝을 보세요, 물에 빠질 것 같죠? 그럼 잘하고 있는 거예요.” 그가 시범을 보이며 물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첨벙거리지 않고 퐁당거리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잘생긴 돌을 물에 던졌을 때 나는 소리였다. 그를 보며 한 명씩 물에 빠졌다. 아까와 다른 소리가 났다. ‘철푸덕’


스타트와 동시에 눈을 감싸고 있던 수경 안으로 물이 들어찼다. 코와 입으로 물 먹는 건 익숙했지만 눈으로 물을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어떤 이는 입수하자마자 수경이 벗겨져 한참을 찾아야 했다.


“우리 몸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머리를 들어버려요. 그 마찰 때문에 수경도 벗겨지고 물도 들어오는 거예요”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자연적인 반응을 고치는 것이 우리가 연습해야 할 문제였다.


스타트 데이라고 부르는 날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반이 돌아가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딱 하루, 단 20분만 주어졌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쫓는 아이들처럼, 공식 스타트대가 설치된 2m 풀으로 향했다. 선수들이 경기할 때 올라가는 스타트대가 눈앞에 있었다. 바라보기만 했던 곳에 처음으로 발을 올리는 것은 마치 시상식대에 올라선 것 같은 두근거림을 주었다. 이곳에 오른다는 것은 수력이 쌓였다는 것이었기에 모두 수상자가 된 것과 다름없었다.


주춤하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가장 먼저 올라선 사람의 입에서 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된 자세도 잡지 못하고 짧은 외침과 함께 뛰어내린 것이다.

“너무 높아요! 여기에서 어떻게 뛰어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녀가 물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아래서 볼 땐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그 뒤로 올라선 몇몇 사람들도 철푸덕 소리를 내며 배치기를 하거나 무서워서 시도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려왔다. 맨 마지막 주자로 올라선 순간 아!라는 짧은 탄성만 터져 나왔다. 갑자기 키가 커지면 이런 느낌일까. 스타트대 높이에 내 키가 더해져 시야가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면과의 거리는 최소 2m가 되어 보였고, 여기서 뛰어내리면 바닥에 머리를 박을 것 같았다. 주저하고 있는 나에게 강사님은 무서우면 내려와도 좋다고 말했다.


결국 뛰지 못했다. 모두 스타트대에 올라가서 뛸 때 그 옆 낮은 타일에서 뛰었다. 다시 올라가기까지 1년이 걸렸다. 매일 뛰는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쌓았다. 사포처럼 까끌거리는 표면이 발바닥에 닿을 때,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 눈을 딱 감아버렸을 때. 비록 보기 좋게 수경이 벗겨졌지만 개운했다.


아직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자세는 어렵다. 배치기 덕분에 샤워할 때 빨개진 배를 보는 게 더 익숙하지만 자세에 집중하다 보면 뒤태에 대한 걱정은 작아진다. 좋은 스타트는 좋은 엉덩이에서 나오는 것 같다. 더 멋진 엉덩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단한 엉덩이의 힘으로 돌고래처럼 입수하는 날을 기대한다. 누군가에게 1칸의 용기가 쌓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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