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코 끝에 시큼한 냄새가 훅 들어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기다란 샤워타월을 양손에 잡고 등에 거품질을 하는 사람, 눈 감고 얼굴을 씻는 사람, 머리카락에 샴푸칠을 하는 사람. 나는 수영복을 입고 이제 막 수모에 물을 적셨다. 냄새는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분명 식초였다.
비빔국수와 회덮밥과 냉면이 생각났다. 샤워실과 어울리지 않는 냄새였다. 가끔 탈의실에서 삶은 계란 먹는 사람은 봤지만 식초와 계란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식초가 있는 곳은 멀지 않았다. 오른쪽 뒤를 바라보니 수경에 뭔가 뿌리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곳이었다. 거기서 강력한 시큼함이 퍼졌다.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스프레이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냄새는 수증기와 만나면 공간을 점령하는 힘이 생긴다. 나는 얼른 누군가가 바디워시로 몸을 씻길 바랐다. 강력한 냄새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질 때면 어김없이 수경에 무언가를 뿌리는 사람을 마주했다. 어떤 사람은 ‘미안해요’라는 말을 하면서 뿌렸고 어떤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뿌렸다. 식초 주인은 수경 안쪽에 그 액체를 한 번씩 뿌리고는 물로 수경을 헹궜다.
수경 주의사항에 안쪽을 만지지 마시오라고 적힌 문구를 봤다. 특수 코팅으로 습기가 차지 않는 수경이었다. 혹시 코팅이 손상될까 애지중지했던 나는 안쪽에 손가락 한번 대지 않았는데, 새로 산 수경의 효과는 한 달이 지나고 약해지기 시작했다.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와 차가운 수영장 물이 만나면서 결로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수영을 하면서 자주 안쪽에 물을 끼얹어야 했다.
습기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구입해서 안쪽에 문질러 봤지만 이상하게 끈적거렸다.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식초, 주방세제, 소주를 1:1:1로 섞으면 천연 습기제거제가 된다는 글을 봤다. 식초 냄새의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식퐁포그라고 불리는 수제 습기제거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효과는 좋지만 가장 큰 단점이 냄새라고 했다. 단점이 정말 컸다. 만들어볼까 싶었지만 식초 인간이 될 용기가 없었다.
식초와 비슷한 레몬즙을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레몬즙을 같은 비율로 섞어서 공병 스프레이에 담았다. 자기 전 수경에 뿌려두고 잘 말려서 수영장에서 찬물로 헹궈주면 귀신같이 습기가 안 생겼다.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아는 사람만 쓴다는 레퐁포그였다. 이 좋은걸 왜 아는 사람만 알고 있을까? 서양의 식초인만큼 가격도 국내 식초와 비슷했다. 식초는 음식에 뿌릴 때 가장 맛있고 멋있다. 괜한 눈치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맑은 시야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큼한 식퐁보다 상큼한 레퐁이 더 많이 알려지길 바라면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