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워밍업부터 절대 멈추지 마세요.” 이 한마디로 뺑뺑이가 시작됐다. 평소 했던 워밍업은 앞사람이 느리면 일어서서 멈추기도 하고, 힘들면 끝에서 쉬다가 뒷사람 먼저 보내고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300m를 돌고 400m를 돌아도 멈추지 않고 한 번에 워밍업을 끝낸 적이 없었다.
“그럼 힘들면 어떻게 해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제가 다시 순서를 정해드릴게요. 이 순서대로 가면 천천히 가도 괜찮을 거예요. 빨리 가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까. 발이 절대 땅에 닿지 않는 게 중요해요 “ 앞사람과 간격이 멀어질 때면 나 때문에 뒷사람이 막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됐다. 평소 강사님이 본 개개인의 능력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순번이 주어졌다. 나는 두 번째 자리에 배치됐다. 1번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매일 하던 워밍업인데, 멈출 수 없다는 새로운 규칙은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모는 것 같았다. 가속도가 붙을지, 오르막길을 만나 서서히 멈출지 알 수 없었다.
처음 100m는 평소처럼 돌았다. 200m를 도는 순간 목이 타기 시작했다. 분명 호흡도 할 수 있고 발차기도 할 수 있고 팔도 돌릴 수 있는데 숨쉬기가 어려웠다. 저절로 모든 움직임이 느려졌고 그건 앞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가쁜 숨을 채우려 더 많은 공기를 마신 탓에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물이 마시고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수영장 물을 꼴깍 마셨다. 일부러 들이킨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입 안이 촉촉해지니까 살만했다. 앞사람 발끝만 보고 따라갔지만 멀어지면 조급해졌고, 가까워지면 살만했다. 일어서는 다리가 보이자 나도 멈췄다. 뒤이어 도착한 사람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갰고 나는 너무 더워서 얼굴을 물 안에 담갔다. 오늘만큼은 수영장 물이 더 차가워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주자까지 모두 들어오자 강사님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어때요? 같은 거리인데도 정말 다르죠? 앞으로 500m를 목표로 조금씩 늘려갈 거예요."
관성처럼 빠르게 움직이려는 몸을 제어할 줄 알아야 했다. 호흡하는 방식도, 발차기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했다. 발을 16번 차야하는 16 비트 킥은 단거리 수영에 사용된다. 빠르고 강한 발차기로 최대한 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발을 번갈아가며 두 번 차는 2 비트 킥은 장거리 수영에 사용된다. 발차기를 하지 않는 만큼 체력소모가 덜해서 오래 돌 수 있다.
수영장 문 닫기 한 시간 전이면 레인을 혼자 쓸 수 있을 만큼 사람이 적어서 일부러 그 시간에 갔다. 뒤에서 발 잡힐 일 없는 안정감은 더 천천히,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처음에는 연습했던 300m를 목표로 삼았다. 몸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새로운 체력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멈추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물과 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순간만 생각했다. 돌고 있는 거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피부에 물이 스치는 감촉, 몸통의 회전, 손끝의 움직임이 더 크게 느껴졌다. 수영하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퇴수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발차기가 멈췄고, 거울 속 나는 태양초처럼 빨갛게 익었다.
불 꺼진 수영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나는 두꺼운 패딩을 벗어버렸다. 뜨거운 열은 타고 남은 재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순간만큼은 겨울 속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