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오경석, #010 19세기 조선의 상황(2)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1

by 연결고리

시대 읽기


#010 19세기 조선의 상황 – 세도정치, 서양의 등장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상적 배경 속에 1850년, 세도정치의 마지막 왕 철종이 집권합니다. 이때는 오경석이 20세, 1차 아편전쟁이 발발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철종은 처음부터 왕위 후계자가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기 직전 철종은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의 삶을 살았고, 권력과 학문에는 전혀 연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왕인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세도 가문은 왕실 계보 중 정치적 영향력이 없었던 철종을 왕위에 세웁니다.



세도정치의 상황은 잘 알려지다시피 세금징수가 문란해져 곳곳의 탐관오리들이 백성을 괴롭히던 시기입니다. 백성들의 불만은 계속 누적되다가 경상도 진주를 시작으로 함경도, 제주도 등 전국으로 확산된 임술농민봉기로 폭발합니다.1)



암이 몸에 퍼질 때 서서히 몸이 망가져 가는 신호가 나타나는 것처럼 농민봉기는 국가 멸망의 위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지배층은 위기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보다는 미봉책을 시행하는 데 그칩니다.



이렇게 조선이 내부적으로 정치적 부패를 경험할 때 대외적으로는 이양선(異樣船)이라고 불리는 외국 선박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양선을 대하는 조선 정부의 기본 외교 원칙은 표류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는 식량을 주어 국외로 보내지만, 통상교섭이나 무력외교에 관해서는 철저히 배척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지배층은 서학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 종교의 유입을 극도로 두려워했기 때문에 근대 문물은 단속 대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2) 철종은 천주교 박해 때 사사 당한 할아버지의 손자였기 때문에 천주교에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했지만3), 서양을 배격하는 주류 지배층의 분위기는 한결같았습니다.



당시 서양은 제국주의적 활동의 일환으로 조선의 해안에 출몰했기 때문에 그들의 협력을 통해 근대적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조선의 입장은 참 난처했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서양의 우월의식은 조선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오경석이 살았던 시절에 서양인이 조선을 여행할 수는 없었으므로 19세기 말 선교사 등이 남긴 흔적을 통해 서양이 조선을 얼마나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외국인들은 조선인을 ‘흉측하고’, ‘지저분하며’, 얼굴은 ‘무표정’하고, 복장은 한결같이 ‘단조로우며’, ‘무력하고’, ‘불쌍한’ 존재들로 묘사했습니다.



또 그들은 조선인이 사는 거리를 “퀴퀴한 물엉덩이와 초록색 점액질의 걸쭉한 것들이 고여 있는, 더럽고 악취 나는 도랑”처럼 불결해 보인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런 서양인의 시선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4)



중세 유럽의 경우 도시와 농촌 가릴 것 없이 길에는 가축과 사람의 분뇨가 넘쳤고, 가축을 기르는 곳에는 쥐가 들끓었습니다. 심지어 일부 도시 국가는 도시 전역에 화장실이 없었고, 창문 밖으로 오물을 던지거나, 화장실이 있더라도 오물이 바로 길 위로 떨어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거리에는 악취가 진동했습니다.5) 아마 서양인의 눈에는 조선의 당시 상황이 서양의 중세 수준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서양은 기술 문명을 바탕으로 아시아가 매우 열등한 존재라고 인식하였고, 그런 우월의식을 바탕으로 서슴없이 무력을 사용하여 중국과 일본을 강제 개항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선에 대한 탐색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은 서양을 오랑캐로, 서양도 조선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두 세력이 대등한 관계에서 건설적인 협력을 이루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역사에서는 이 시기 조선이 시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도적으로 개항하지 않은 잘못을 일반적으로 부각하지만, 개항을 요구한 서양이나 일본 모두 ‘우월의식을 바탕으로 조선을 이용하려고 했던 사실’ 또한 중요한 역사적 진실이므로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청년을 위한 역사


1) 「철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2) 전제훈, 「이양선 출몰에 따른 근대문물 인식변화」, 『한국도서연구』 32, 한국도서학회, 2020.12, 13-14쪽
3)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1, 인물사사상사, 2007, 52쪽
4) 이영진, 「제국의 시선들 사이에서 19세기 말 조선의 문명 담론과 근대성 문제에 대한 일고찰」, 『비교문화연구』22, 2016,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405-406쪽
5) 안일평, 「[기고] 전염병과 역사」, 매일일보,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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