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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무성생식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18. 2025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런 건 없는 거 같아. 모든 건 계속 변하더라고. 사람도 자연도 우주도 진리도……. 예전부터 난 확신하고 있었어. 어떤 것이든 각자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고. 어딘가에 머무르는 것 같은 시간에도 존재는 계속 변화하는 중이고, 그걸 거부할 수 없다고. 아무런 근거 없는 직감이었지만 말이야.


  내 직감을 지식으로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던 때에, 이 직감과 비슷한 힌트 몇 가지를 주워들을 수 있었어. 한 가지는 열역학 2법칙이고, 또 하나는 ‘무한 무성생식’이라는 공상이야.


  ‘무한 무성생식’은 한 마디로, 우리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며 생식한다는 거야. 내가 알기로 생식은 유전 행위를 전제하는 단어지만, 오늘은 그걸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으로 나눠봐야 해. 우리가 실시간으로 섹스와 돌봄 노동을 하고 있단 말을 하려는 게 아니거든. 음? 아, 하고 있나? 잘 모르겠네.


  아무튼, 실시간으로 생식하며 변화한다는 게 뭔지 얘기해 볼게. 내가 누군가와 악수한다고 생각해 보자. 꽤 흔한 일이야. 남의 손을 잡고, 잠시 흔들 일이 생기기 마련이지. 딱히 대수로울 일은 아니지만, 악수 이전의 나와 악수 이후의 내가 다르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물론 아무 변화도 없을 거야. 너무 예민한 생각이고. 근데 난 이런 생각을 떨쳐 낼 수 없단 말이지. 절대로 악수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데, 뭔가 변한 거 아니야?


  여기서 말하는 건,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거랑은 조금 다른 거야. 한 번 손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자. 분명 손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떤 이질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거야.


  그건 크게 심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거로 나눌 수 있어. 심리적인 건 이런 거지. 상대의 손을 잡은 서로의 힘이 아직 느껴지는 것 같고, 뭔가 상대의 손에 있던 이질적인 게 조금은 묻은 거 같은 느낌말이야. 어쩌면 서로의 강하거나 상투적인 의지를 확인한 거 같아서 격양되거나 거리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라. 악수한 손을 통해서 말이야.


  물리적인 변화는 훨씬 확실하게 있어. 두 사람의 피부조직이 물리적인 접촉을 했고, 조직 사이에 조금의 물질 교환이나 화학반응이 일어났을 거야. 온기 같은 경우에, 잠깐은 층을 유지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시간이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그냥 상상에 가까운 예측이지만, 분명 어떤 변화가 있었단 말이지.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쩨쩨한 곳까지 구태여 의식하는 건지 알 거 같지? 이 아이디어를 말해 준 사람은 이런 물리적인 영역을 ‘무성생식’이라고 불렀어. 사실상 심리적인 영역도 ‘무성생식’이 아닐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지.


  슬슬 머리가 아파. 당신 말고, 나 말이야, ㅎㅎ. 돌이켜 보면, 정말 운이 좋은 순간이었어.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니. 그 사람은 시간강사(이 용어가 맞나?)로 SF를 다루는 교양 수업을 맡고 있었지.

 

  하루는 그가 이렇게 서두를 꺼냈어. SF는 자주 육체와 정신이 불일치된 상황을 가정한다고. 사이보그의 육체와 정신의 괴리나, 영화 <아바타>처럼 자기 육체보다 더 많은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인공적인 육체, 극도로 발전한 안드로이드나 인공지능이 살아 있는 육체를 가지려 하는 내용, 이식받은 신체 부위가 독립된 의지를 갖춘 것처럼 행동하는 거부 반응을 상상하는 거 말이야.


  그는 SF가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연구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봤어. 더 나아가서 정신과 육체는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서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지.


  내가 짜릿했던 부분은 그가 모든 게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야. 언제나 내가 더 잘 설명할 수 있길 바라는 주제였으니까. 누군가와 악수한 나는 이전의 나와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미약한 자기 복제를 이뤄낸 거라고!


  비록 상상이지만, 내 직감은 이렇게 얘기하는 거 같아. 세상에 유아독존 상태란 없다고. 존재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상태에 있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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