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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스트 Apr 04. 2024

시간은 흐르고 발은 커져


비가 그친 뒤


어제 하굣길에 실수로 웅덩이를 밟아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고 축축한 양말을 힘겹게 벗으며 씨익 웃는 딸아이. "그래. 잘 다녀왔어. 찝찝했을 텐데 어서 벗어. 젖은 건 빨면 되지. 우리 똥강아지 씩씩하네." 하고 안아주었다.


예전에 학교 정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데 그날도 비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아이들이 조그마한 덩치로 가방 메고 우산 들고 삼삼오오 걸어 나오는데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자 여기저기서 터지는 비명소리에 뒤집어지는 우산에 지켜보던 엄마들은 놀라고 걱정되고 귀엽기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바람이 부는 날 우산 들고 빗속을 오고 가는 일은 어른도 쉽지가 않다. 이제는 조금 큰 언니가 되었다고 혼자 씩씩하게 다니지만 궂은 날씨에는 아침 배웅부터 여전히 엄마의 당부가 길어지게 된다.


"맨홀뚜껑은 밟지 말고 미끄러우니 뛰지 말고

차 오는지 잘 보고 우산 들고 앞 잘 보고 가고......."


아장아장 걸음마 뗄 때 신었던 첫 신발이 아이의 손 보다 작아지고 어느새 동생 신발과 눈에 띄게 비교될 만큼 모든 게 훌쩍 커버린 지금.


언제 이만큼 컸을까. 더럽혀진 신발을 닦고 물감 묻은 옷을 빨고 젖은 장화를 빨아 줄 날이 앞으로 얼마나 될까. 곧 내 발만큼 아이 발도 커지겠지. 매일매일 커 가는 아이를 보며 신기하고 기특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아직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많기에 신발을 씻는 이 시간도 행복할 수밖에. 지금이 지나면 그때가 좋았었다 그리울까 봐. 때론 힘들 때도 있지만 그 또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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