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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Aug 03. 2023

가장 말도 안 되는 공부

결국 이과로 남아있지 못했지만

우리 학교는 매년 졸업생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한 편씩 채워나간 책을 발간한다. 나는 11기 졸업생임에도 그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7기 선배님들의 책부터 전부 다 차근차근 틈날 때마다 읽었다. 얼굴도 모르지만 나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 머물렀을 누군가의 시간들. 그의 힘들었던 시기와 반짝이던 시기를 읽어 나가는 것은 각각 다른 의미로 위로가 됐다.


다만 졸업식 직전에 받은 우리 기수의 책은 제대로 펼쳐보지도 않았다. 우선 내 글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다른 친구들의 글도 마냥 남일처럼 읽을 수 없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나는 우리 학교에 대해 언젠가부터 늘 묘한 애정과 증오를 동반하며 살았고 그 감정들이 조금은 빨리 휘발되었으면 했다.


그럼에도 절대 흩어져버리지 않을 기억이 있다면 무작정 외워대기만 했던 엉터리 공부이다. AP 물리학을 수강하던 2학년 때의.


공대 지망이 아닌데도 그 과목을 수강한 이유는 순전히 선배님들의 추천 때문이었다. 당시 AP 물리학 과목은 절대평가 과목인 데다가 압도적으로 높은 수행평가 비율 때문에 높은 성취도를 받기가 비교적 쉬웠다. 수행평가가 만점이고 중간고사 점수가 높으면 기말고사는 백지를 내도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우리 학년도 모두가 AP 물리학을 쉬어가는 과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 어떤 일에도 예외가 있지 않은가. 나는 아니었다. 나 혼자만 피 터지게 공부했다.


학교 커리큘럼 상 2학년 1학기 때 AP 물리학을, 2학기 때 미적분학을 수강했다. AP 물리학은 대학 과정의 물리학을 영어로 배우는 과목이었다. 한 마디로 미적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 수준의 물리학을 배운 것인데, 정말이지 무식해서 감행할 수 있었던 용감한 선택이었다. 자연로그가 뭔지도 모르고 지수함수 미분을 들어본 적도 없던 내가 극좌표계와 미분 방정식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에게 물리학 교재는 이집트 상형문자로 된 소설책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다 보니 이과를 지망했지만 애초에 나는 과학에 정말이지 소질이 없었다. 그런데 물리학은 이상하게도 정말 조금만 더 하면 성적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절함을 잊어버린 지 오래된 나에게 그건 유일한 절실함이었다.


선생님께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질문을 정말 많이 했다. 모르는 게 많으니까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가끔은 교무실로 책을 들고 찾아갔다. 어디서부터 이해가 안 되는지 증명 과정을 짚어보다가 문득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그냥 미분하면 원래 이런 건가요? 너무 당연한 식을 저는 미적분을 안 배워서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요. 안타깝다는 듯이 헛헛하게 나를 내려다보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미적분을 따로 공부할 시간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불행이자 다행이었던 건 AP 물리학 시험은 100% 서술형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고, 그래서 나는 모든 풀이과정을 정말이지 다 외웠다. 교재에 있는 해설과 선생님의 해설을 비교해 가며 문제마다 최적의 풀이방식을 만들어갔다. 나는 어떤 해설이든 이해할 수 없었기에 꽤나 힘든 작업이었다. 그런 뒤에는 정리한 모든 식을 싹 다 통째로 외웠다. 문제 그림만 보고서도 답안을 적어낼 수 있을 때까지 전부 다. 이해가 안 되면 내가 글자를 쓰는 건지 기호를 그리는 건지 모를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달달달달 외웠다.

당시 사용하던 노트. 지금 보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중간고사에서 AP 물리학 시험을 보고 나서 나는 점심시간까지 손을 떨었다. 식판을 붙잡은 손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걸 보며 내 의지와 관계없이 몸이 움직이는 게 이런 거구나를 처음 느꼈다. 암기로만 공부한 데다 완전한 긴장 상태에서 시험을 보니 머릿속이 하얘졌고, 그렇게 외웠던 식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중간고사 범위는 별로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기가 막히게 낮은 점수를 받았다.  


쪽지 시험은 늘 저녁시간 직후인 7시에 시행됐다. 나는 그때마다 저녁을 거르고 공부를 했는데, 친구들은 다른 과목도 아니고 AP 물리학을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며 어이없어하는 반응이었다. 나는 기말고사를 잘 볼 자신이 없었기에, 식사보다 마지막까지 한 줄이라도 더 외우는 게 중요했다. 요령도 없고 지식도 없으면 성실하기라도 해야 했다.


공부하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단순히 힘들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회의감이 들었다. 애초에 내 뇌가 전혀 알아듣질 못하는데 외운다 한들 이게 공부가 맞나. 성적을 위한 공부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기분이었다. 중학생 때의 단순 암기식 공부가 싫어서 온 학교에서 또다시 단순 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배운 건 엄연히 말하자면 물리학 지식보다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법과 노력하는 방법이었다. 결국 나는 마지막 쪽지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고, 기말고사 때 비약적으로 성적을 올렸다. 끝내 넉넉한 점수로 성취도 A를 받았다. 수강생 대부분이 받은 점수이기에 결과적으로 엄청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나는 다른 과목에서 교과 우수상을 받았을 때보다도 그 점수가 더 소중했다. 고등학교에 온 뒤 노력으로 극복해 낸 게 하나라도 생긴 것 같아서.


가끔씩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교재를 들고 햇볕이 들어오는 도서관 2층으로 올라가던 날들을.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 그저 묵묵하게 한 번이라도 더 따라 쓰던 글자들을. 그렇게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공부하기도 했는데 못할 게 뭐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결국 나는 3학년의 절반이 지나갈 즈음에 문과로 방향을 틀었다. 이과에서의 도피 목적도 있었지만, 문과 과목들이 성적이 높고 적성에 잘 맞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은 이따금씩 나에게 이과 계열 진학을 생각해 본 적은 없냐는 질문을 한다. 그 질문에는 언제나 약간의 향수를 느낀다. 예전에는 이과 지망이었는데 때려치웠다고 장난스럽게 대답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길게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무수히 많았던 무기력한 실패들과, 미련하고 바보 같았던 단 하나의 작은 성공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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