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포근한 구름 위를 뒹구는 기분
요즘 밴드 음악을 자주 듣는다.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한 곡씩 잘게 나누어 하루 중 딱 한 번씩만 듣고, 비교적 밝은 분위기인, 두 번째로 좋아하는 앨범을 반복 재생한다. 종종 최선보다 차선을 택한다. 깨끗하게 정제된 행복은 자주 만날수록 탁하게 변하니까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아무 생각 없이 듣다 보니 분명 한글로만 이루어진 가사인데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끝도 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한 구절이 있었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알람 시계 없이 지내는 한가한 요즘은 눈이 부셔서 잠을 깰 때가 많다. 이른 시각에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1년 전의 수많은 아침들이 생각난다. 특히 수프에 일주일치 감정을 녹여 떠먹던 토요일 아침이.
그때 내가 왜 지쳐있었는지는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예민한 성격을 기숙사 속에서 2년간 눌러오다 보니 한계에 다다른 건지, 아니면 매일이 너무도 똑같아서 그 권태로움에 무기력해진 건지. 너무도 많은 이유가 섞여 있었을지도, 오히려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침에 눈을 뜨기 싫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왜 해가 뜨면 내 하루도 같이 시작되는 거지, 나는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이 드는 것조차 두려웠다.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하루를 살았다. 기계적으로 사는 것 외에는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분명 하루종일 잘 웃었다. 친구의 별 거 아닌 농담에 남들보다 오래 웃었고, 복도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치면 활짝 웃으며 안아주었다. 다만 그 웃음이 내일을 살고 싶게 만들어주지는 않았을 뿐이다. 조금도 기다려지지 않는 내일을 준비하며 오늘을 사는 게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그런 마음을 방치하고 방치하다가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은 2학기 때는 토요일 아침 자습을 취소하는 것이었다. 자정이 넘어가면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되는 내 신체 리듬상 최대한 오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공부하기에 용이했다. 그래서 주말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지난 반년간 토요일에도 자습을 신청해서 평일과 똑같이 일어났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버겁다면 그 시간을 좀 늦추면 되겠지.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몸부림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열심히 사는 게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냥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고 피곤한 마음까지 누군가와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고 싶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에 룸메이트 두 명은 자습을 하러 가고, 나는 룸메이트들이 나갈 준비를 하는 소리에 어렴풋이 잠에서 깼다. 둘이 문 밖으로 나가고 정적이 찾아오면 다시 잠에 들었다. 더 이상 피곤하지 않을 때까지 미련 없이 푹 잤다. 자고 일어나면 작은 기숙사 방 안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이따금 햇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범한 풍경인데도 햇빛이 닿으면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세수를 하고,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슬리퍼를 끌며 학교 내의 편의점으로 갔다. 감자 수프를 사서 온수를 부은 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먹었다. 누군가의 속도에 맞출 필요 없이, 원래 내 속도대로 천천히. 왜 감자 수프였냐고 묻는다면 그저 감자의 투박함과 수프의 부드러움을 좋아했고, 한 음식이 마음에 들면 질릴 때까지 몇 달이고 그것만 먹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몇 없는 감자 알갱이를 씹으며 노래를 들었다. 평소 읽고 싶던 시집을 조금 읽었다. 다시 세안을 한 뒤 카디건을 걸쳐 입고 향수를 뿌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가방을 메고 면학실로 향했다. 그러면 힘들이지 않고 일상이라는 궤도 위로 다시 올라갈 수 있었다.
아이가 채소를 먹지 않으면 부모는 주로 채소를 잘게 썰어 밥 속에 숨겨두는 방법을 쓴다. 나는 일상을 버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 방법을 택했다. 우울과 피로와 무력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썰고 또 썰었다. 그 감정을 토요일까지 모아 두었다가 감자와 함께 씹고 수프와 함께 삼켰다. 흔하지 않은 고요와 혼자만의 시간을 햇빛을 쬐며 충분히 누렸다.
그저 좋았다.
그 평화와 따스함이.
일요일에는 방 안에서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토요일에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고 온 룸메이트들은 일요일에는 대체로 늦잠을 잤다. 나는 평일보다는 늦게, 토요일보다는 일찍 잠에서 깨서 아침 식사 대신 초콜릿을 집어 먹으며 방에서 공부를 했다. 룸메이트들을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그 시간도 꽤나 평온했다. 비록 자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곁에 둔 채 일상 속에서 느림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서.
감자 수프에 흘려보낸 감정의 빈자리에 새롭게 피어난 감정들을 하나씩 심었다. 그렇게 그 시간을 지나왔다.
뒤돌아봐 생각보다 날이 좋았는데
좋았던 일만 오래 기억하는 성격인지라 지금 1년 전을 돌아보면 감자 수프가 포근하고 물렁하고 맛있었다는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때의 무력과 피로는 이미 수프 속에 다 녹아 헤집고 헤집어야만 조금 건져낼 수 있다.
우울은 정말 수용성인가 봐.
요즘은 아침을 맞이하는 게 너무 좋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다. 노래 가사처럼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구나, 그 정도. 적어도 몸을 일으키는 게 무겁지 않고, 눈을 뜨면 하루가 시작되는 게 무섭지는 않다.
우울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이니까, 다시 맞이해야만 하는 날이 오면 감자 수프를 먹어야지. 그리고 나에게 수프를 충분히 불어 식혀 먹을 시간을 내어줘야지. 나에 대한 사용 설명서를 이렇게 또 한 줄 적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