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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저투 Dec 03. 2024

이것은 뉴발란스인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인가?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일이다. 동네 어귀마다 하나씩은 있는 가맹점 세탁소. 그곳에 들어설 때만 해도 나는 이 방문이 이토록 긴 여정이 될 줄은 몰랐다. 찢어진 점퍼 팔을 수선하러 간 그날, 나의 기억 속에는 단순한 수선 그 이상의 이야기가 새겨지게 되었다.          



겨울바람이 매서웠던 그날, 나는 오래도록 아껴 입었던 점퍼를 들고 세탁소 문을 열었다. 문득 스치는 바람 소리가 마치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 마주한 직원은 주인이 아니라며, 친구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정성스럽게 내 요구사항을 설명했다. 아무 천이라도 좋으니 덧대어 꿰매달라고. 친구인지 알바인지 모를 그 분은, 내용을 종이에 적으면서 불안한 내 마음을 잠재워 주었다. “주인 오면 전화하라고 할께요” 그러나 그 약속은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다. 약속된 전화는 오지 않았다. 발걸음을 재촉해 다시 찾아간 세탁소에서 주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선실에서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받았다고 했다. 점퍼는 내일 올테니 그때 찾으러 오라 했다. 그리고 다음날, 갑자기 수선이 가능하다는 소식. 오락가락하는 답변에 나는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또 다시 다음날 방문을 했다. 마침내 받아든 점퍼를 보는 순간, 나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요청했던 '천을 덧대어 꿰매는' 단순한 작업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서툰 초보자의 실습작품처럼 삐뚤빼뚤한 오바로크 자국만이 가득했다. 바느질로 인해 점퍼가 빵꾸가 난 것만 같았다. 전문가의 손길은커녕, 기본적인 수선의 원칙조차 무시된 처참한 결과물이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주인의 태도였다. 사과는커녕 마치 귀찮은 일을 떠맡은 듯한 표정으로 "돈 안 받을 테니 가져가세요"라는 말을 던졌다. 처음 내게 전화만 했더라도, 상황을 미리 알려만 줬더라도, 그 순간 나는 아주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단순한 실수나 미숙함이 아닌, 고객을 향한 기본적인 존중이 결여된 모습 앞에서.          


이를 어째야 하나. 다행히 기쁨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동네의 작은 세탁소. '착한가게'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곳에서, 나는 진정한 장인을 만났다. 점퍼를 보자마자 사장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리털 점퍼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지? 이건 수선의 '수'자도 모르는 사람이야."     


" 아님, 이 점퍼 천 가져오면 내가 해 줄게 "


" 아님, 이거라도 할거야? "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는 오랜 세월 쌓아온 전문성과 자부심이 묻어난 사장님이셨다. 갑자기 서랍 속에서 꺼내 보여준 여러 가지 천 조각들. 그중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 마크가 새겨진 천이 찢어진 부위와 딱 맞아떨어졌다.     



뉴발란스 브랜드의 정품 천을 구하려면 3주나 기다려야 했고, 날은 추워서 나는 당장 입어야만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준 그녀의 배려심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수선 절차를 설명해 주셨다.     



손놀림은 섬세했고, 설명은 친절했다. 무엇보다 나의 입장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서비스가 아닐까.          



이 경험은 단순한 점퍼 수선 이야기를 넘어선다. 같은 '세탁소'라는 간판을 걸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서비스의 질은 천지차이였다. 가맹점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감, 그리고 개인 사업자라는 이름이 주는 불안감.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내 점퍼는 더이상

.

.

.

뉴발란스도 내셔널지오그래픽도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점퍼가 되었다. 작은 세탁소의 따뜻한 마음씨가 더해져 더욱 빛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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