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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저투 Dec 04. 2024

'빚'은 '빛'이 아니다



자유란 무얼까

어쩌면 그것은 매달 말일의
두려움없이 달력을 넘길 수 있는 것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것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들과의 자리. 시간은 흘러갔지만, 여전히 스무 살 때처럼 수다스럽고 편안한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삶의 명암을 보았다. 마치 하늘과 땅처럼 극명하게 갈린 두 개의 서사가 펼쳐졌다.     



한 친구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부모님의 별세, 남편의 이직, 자녀의 전학... 연이은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지쳐있었다. 반면 다른 친구는 활기가 넘쳤다. 동생의 결혼 소식, 부모님의 빠른 쾌유, 남편의 승진까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삶의 만족감이 묻어났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들의 상황이 선명해졌다. 힘들어하는 친구는 얼마 전 이사하면서 큰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거기에 전세 자금 대출까지 겹쳐 매달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반면 다른 친구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건물 몇 채의 임대료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차이는 분명했다. 한 친구에게는 무거운 대출의 짐이, 한 친구에게는 든든한 자산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빚'이라는 글자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지를. 대출의 유무가 우리의 삶을 이토록 다르게 만들어놓을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종종 말한다. '빚'도 '빛'처럼 밝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지만 그 말의 무게를 정말 이해하고 있을까? 대출은 마치 달콤한 독과 같다. 처음에는 희망으로 다가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일상을 서서히 잠식해간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전세 대출, 신용 대출, 주택담보대출... 수많은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스며든 빚은, 이제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마치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며, 때로는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만들어 버릴지 모른다.



대출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일이다.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는 우리의 생활을 옥죄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마치 내 친구처럼, 인생의 큰 시련 앞에서 더욱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빚은 마치 도미노처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 경제적 어려움은 단순히 돈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족 관계를 흔들고, 건강을 위협하며, 때로는 우리의 자존감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     



내 친구의 이야기처럼, 예상치 못한 불행이 찾아왔을 때 대출은 그 고통을 배가시킨다. 부모님의 별세라는 큰 상실감에 더해, 대출금 상환에 대한 부담은 그녀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남편의 이직, 자녀의 전학... 이 모든 변화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경제적 부담이라는 렌즈를 통해 더욱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증폭되었다.         


 

그녀는 만사가 다 구찮다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했고, 사는게 재미없다 했다. 그녀의 스트레스가 보였다. 밤잠을 설치며, 아이와 대화는 줄어들며, 작은 일상의 기쁨조차 누리기 어려워하는게 보였다. 결국 빚은 우리의 현재를 옥죄일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앗아가는 것일까?     

          



부의 흐름은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는 자연의 물길과는 정반대다. 돈은 항상 가진 자에게로 흘러간다. 대출의 이자는 결국 금융권을 통해 자산가들에게로 이동하고, 이러한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공고해진다.     



내 두 친구의 현재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자산이 있는 친구는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위기의 순간에도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반면 대출이 있는 친구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부의 양극화는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 사람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어 있다. 같은 학교를 나와 비슷한 출발선에 섰던 친구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보며, 나는 이 시스템의 무서움을 실감한다.          



우리는 종종 '빚'을 '빛'으로 착각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자위하면서, 그 무게를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빚은 결코 빛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그림자일 뿐이다.     



대출의 무서움은 그것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든다는 데 있다. 그것은 단순히 매달 갚아야 하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선택을 제한하고, 기회를 빼앗으며, 때로는 인간관계마저 왜곡시킨다.       


   

나는 조용히 다짐해본다. 내 삶의 주도권을 절대 빚에게 넘기지 않겠노라고. 남의 돈으로 내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이 작은 다짐이, 언젠가 나를 진정한 자유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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