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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콤달콤 May 02. 2024

밍밍한 두유가 마시고 싶은 날

   


강아지들이 짖는다.

초인종보다 발자욱을 먼저 알아채는 예민한 녀석들

수많은 발자욱 소리 중 나의 발자욱을 기억하는 녀석들  

   

그녀가 문을 연다.

나보다 내 손에 들린 플라스틱을 반기는 엉뚱한 그녀

수많은 플라스틱 중 나의 플라스틱을 좋아하는 순수한 그녀    

  

나는 두유를 마신다.

밍밍한 두유보다 시원한 물이 좋은 나

수많은 문장 중 ‘감사합니다’ 문장을 내뱉는 소심한 나

.

.

.     

오늘도 어김없이 강아지들이 짖는다

그녀가 나오지 않는다.

수차례 초인종을 눌러도

강아지들이 한참을 짖어대도     


네모 플라스틱 속 반찬이 식어간다.

그녀가 나오지 않는다.

탕탕탕 힘주는 주먹만

멍멍멍 애달픈 소리만     


밍밍한 두유가 마시고 싶다.

오늘따라…

유독…



밍밍한 두유가 마시고 싶은 날  (by. 새콤달콤)


< 사진출처 : 네이버 - 광고가 절대 아님 >


독거 어르신들에게 반찬 배달해 드리는 봉사를 한 적 있다.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다른 어르신들은 반찬 배달이 오면 기쁨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해 주셨다.


큰 함박웃음을 짓는 분,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시는 분, 연거푸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르신 댁이 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눈치챈, 강아지들이 먼저 반가움을 소리로 표현하곤 했다. 어르신은 반찬이 맛나다며 두유를 챙겨주시곤 했다.


하루는 초인종을 여러 번 눌러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시지 않길래, 어디 외출하셨나 보다 했다. 반찬이 오는 날은 외출하지 않고 기다려 주셨던 분인데 이상하다 했다. 반찬을 문고리에 걸어두고 돌아서는데 유독 강아지들 짖는 소리가 애달팠다.  


다음 날! 두유를 손에 쥐어주시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홀로 집안에서. 강아지들은 애달프게 울었던 것이다.



대학생 때 MBC 베스트극장 드라마 공모전에 글을 써서 공모한 경험이 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시 되물어보고, 아름다운 단어를 찾아서. 원고지에 빼곡히 써 내려간 기억이 있다.


배워본 적 없으니 당연히 표현법도 글 흐름 전개 방식도 서툴렀다. 상을 받고 싶다거나 당선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털 끌 만큼도 없었다. 단지 그 과정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예상대로 결과는 탈락이었고, 기대를 안 했기에 슬프지도 않았다. 며칠 후 나의 이야기를 들은 선배가 흥미로운 주제를 던졌었다. 카피라이터로 꽤 잘 나가는 선배였다.


그 바닥에 아는 사람 없으면 절대 공모하지 말라는 거다. 인맥으로 건너 건너 당선되는 거고, 후배양성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 했다. 너 같으면 가르치고 아는 동생 또는 후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팁 알려주면서 주변에 추천하지 않겠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더 놀라운 건 큰 대회 공모전일수록 탈락자 글들을 따로 모아 재생산되는 영감의 기반으로 이용된다고 했다. 정말로 그 바닥을 깊이 팔 거 아니면 일치감치 포기하라 충고한 적이 있다.


한 번은 또 이런 일이 있었다. XXS 출신 작가였는데, 소설 드라마를 꾸준히 혼자서 롸이트하는 지인이다. 그 당시 인터넷에서 뜬 작가들이 많아서 ,  너도 인터넷에 연재 방식으로 글을 올려보라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돌아온 답변은 카피라이터 선배와 같은 뉘앙스였다. 인터넷에 글을 쓰면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면서, 절대 해선 안된다는 거다. 그렇게 온라인으로 빵! 뜬 사람은 정말 천운이 내린 거라며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최근 알쓸별잡 김영하 작가님이 방송에서 말씀을 하셨다.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가. 두유라는 소재의 '시'에서.


이 작품집은 일상이 '시'가 되는 하루다.

도서관에 가면 정말 많은 책들이 있다. 시집도 어마어마한 수준의 보유량을 갖추고 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시, 읽을 때마다 의미가 달라지는 시, 아무리 읽어도 대체 이건 뭔 뜻인가 어려운 시. 등등 방대하다.


일부 어떤 사람들은 '시'를 어렵게 생각한다. 나도 어렵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굳이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시'들만이 진정한 작품인 것일까? 약자의 고뇌, 나라를 향한 애국, 충절, 부정부패를 풍자하는 만상, 등등 심오한 가치만이 작품인 것일까?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시'는 절대 어렵지 않고, 나의 감정을 몇 가지 단어를 조합하여 만든 내 생각의 결정체이다. 그래서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은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시'가 주는 진정한 역할이라 생각했다.


최근 한 단체에 시를 공모한 적 있다. 당선이 되면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이다. 내 주제는 그때도 확고했다. '시'는 절대 어렵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에서 받는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상금보다 '시인' 등단에 욕심이 났었다. 갖고 싶었다. 결과는 역시 떨어졌다. 실력이 없다니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나. 문득 카피라이터 선배와 XXS 지인이 해 준 말이 생각나는 하루다.


그 공모전 응모마감일은 1월 20일이었고, 나는 하루 전 1월 19일에 7~8 작품을 제출했고, 합격자 발표일은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인데, 마감일에서 2주가 지난 2월 9일 이미 합격자는 정해져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만약 공모전 불합격했다면 너무 슬퍼말라. 체계에 불합리함을 토로하기 전, 일단 그들의 멤버가 먼저 돼야 하는 게 순서다. 그보다 먼저 자신의 실력을 뒤돌아보는게 순서다. 또한 운이 따라줘야 한다.


다시 읽어보니 나의 '시'는  등단 시인들에 비해 허접한 수준의 '시' 다. 그렇다한들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시'는 나의 감정을 대변하는 노래나 다름없기에, 충분히 일상을 소재로 할 수 있으며 어렵지 않다는 것을.


내가 쓴 '시'가 최고로 멋진 '시'다.  

당신의 '시'도 최고로 멋진 '시'다.

.

.

.

밍밍한 두유가 마시고 싶다.

오늘따라…

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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