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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한 조각의 온기

by 오늘사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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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식당에는 아침부터 구수한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부엌에서는 커다란 찜기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고 한쪽에서는 하얀 쌀가루 반죽이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겨 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서 홀로 계신 어르신들의 마음이 허전해질까 걱정되어 오늘은 함께 송편을 빚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옛날엔 명절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떡을 빚었지."


어르신들은 두 손에 쌀가루 반죽을 올려놓고 조심스레 빚기 시작했다. 반죽을 손끝으로 조물조물 빚어내는 모습이 정겨웠다. 크고 둥근 것, 작고 길쭉한 것, 반달 모양이 선명한 것까지—

각자의 손길이 닿은 송편들은 마치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쿠, 이건 너무 커버렸네!"


한 어르신이 큼직한 송편을 들어 올리며 웃자 주변에서도 따라 웃음이 터졌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송편을 빚는 분도 계셨고 서툰 손길로 반죽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모양을 잡아가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한 모양이 아니었다. 따뜻한 손길이 오가고 함께한다는 온기가 전해지는 이 순간이 더욱 의미 있었다.


정성껏 빚은 송편을 찜기에 넣고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레 옛이야기가 오갔다.


"내가 어릴 땐 할머니가 떡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우리 때는 송편 속에 깨랑 꿀을 넣으면 최고였지.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깨 맛이 입안 가득 퍼졌거든."


"맞아,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고 해서 일부러 정성 들여 만들기도 했지."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날 즈음 찜기에서 뿌연 김이 피어오르며 고소한 향기가 퍼졌다. 마침내 갓 쪄낸 송편이 식탁 위에 올려졌다. 방금 만들어진 송편은 쫄깃하고 윤기가 흘렀다. 어르신들은 조심스럽게 한 개씩 집어 들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고소한 깨소가 입안 가득 퍼지며 따뜻한 달콤함이 스며들었다.


"아이고, 이 맛이야!"


"정말 옛날 생각난다."


감탄과 웃음이 오가는 가운데, 한 어르신이 송편 하나를 손에 들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선생님도 하나 먹어봐요. 우리 손주 같아서 그래."


나는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받았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입 베어 물자 쫄깃한 떡 사이로 고소한 깨소가 퍼지며 입안을 감쌌다. 어릴 적 명절에 할머니가 정성껏 빚어주던 그 맛과도 닮아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겨운 순간이었다.


"오늘 참 좋았어. 이런 날이 자주 있으면 좋겠네."


"그래, 다 같이 모여서 떡 빚고 이야기 나누니까 참 따뜻하구먼."


그렇게 이야기 나누며 남은 송편을 하나둘 더 집어 들었다. 어느새 복지관 식당은 송편의 구수한 향기와 함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유난히 따뜻한 온기가 감돌던 하루. 명절을 앞둔 복지관의 작은 식탁 위에는 송편만큼이나 정겹고 소중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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