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8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큐방, 흡착판 잘 붙이는 방법

생활 속 과학 이야기

by 전영식 Jan 18. 2025

욕실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흡착판을 이용한 각종 걸이 등이다. 면도기, 칫솔, 비누, 치약, 수건 등을 거울이나 타일에 붙일 때 많이 사용한다. 간단하게 붙일 수 있고 접착제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제거 후에도 자국이 남지 않고 깨끗하다.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나 블랙박스를 달 때도 많이 이용된다.


보통 소소한 물건의 이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흡착판이 그렇다. 빨판, 압축판, 뽁뽁이라고도 하고 일본말인 큐방(きゅうばん, 吸盤)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된다. 영어로는 suction cup이라고 한다.


하지만 온도와 습도의 변화가 큰 욕실의 환경상 처음엔 잘 붙어 있던 흡착판이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곤 한다. 한번 떨어진 흡착판은 다시 떨어지고 두세 번 붙여도 또 떨어진다. 꼭 떨어지는 것만 다시 떨어져 짜증이 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집안 여기저기, 자동차에도 남겨진 흡착판이 꼭 있기 마련이다.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거나 한여름에 온도가 높아지는 시기에 차 내비게이션의 흡착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타일 흡착기(tile suction puller), Robert.Harker타일 흡착기(tile suction puller), Robert.Harker


흡착력이 센 것은 유리나 돌침대를 나르는 데 사용될 정도로 흡착성이 좋다. <미션임파시블> 같은 영화에서도 건물침입을 위해 유리를 동그랗게 자른 후 흡착판으로 당겨서 구멍을 내고 들어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진공펌프로 음압을 유지시켜 자동차공장 등에서 사용하는 로봇이 부품을 옮길 때도 흡착판이 사용된다. 산부인과에서는 출산 시 아기머리에 붙여 아기를 꺼내는 흡입기로 응용한다*. 생각보다 여러 곳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편리한 도구이다.


* 최초의 흡입기 분만은 1705년 영국의 외과의사 제임스 영이 실시했다.


흡착판의 원리


흡착판이 평평한 표면에 눌려지면, 흡착판의 유연한 재질이 표면에 밀착되면서 안쪽의 공기를 밀어내게 된다. 이때 내부에는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진공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면 외부의 높은 공기의 압력이 낮은 빨판 내부로 밀려들어가려고 하면서 빨판이 붙게 되는 것이다.


이때 표면이 편평하거나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하면 압력이 세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붙은 듯한 흡착판도 잠시 후엔 떨어져 바닥을 뒹굴게 된다.


결국 대기압이 있는 곳에서 이보다 낮은 압력이 있다면 흡착판이 붙는다. 따라서 진공상태에서는 흡착판은 떨어진다. 대기압이 낮은 높은 산의 정상이나 비행기 등에서는 흡착판이 잘 붙지 않는다.


Couch-scratching-catsCouch-scratching-cats


흡착판 잘 붙이는 방법


크게 밀착도를 높이고 유지하는 방법과 흡착판의 유연성을 키우는 방법이 있다.

밀착도를 높이는 방법으로는 빨판의 안쪽의 이물질을 모두 제거하고 여기에 샴푸나 린스 등을 한 방울 뿌려 골고루 펴지게 한 후 부착하는 방법이다. 이때 바로 물건의 걸어 하중이 발생하게 하면 안 되고 적어도 30분 정도 지나서 샴푸 등이 골고루 마른 후에 사용해야 한다. 딱풀을 발라줘도 좋다고 한다.

흡착판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법은 빨판 자체가 굳어서 떨어지는 경우에 입김이나 드라이기로 말랑말랑하게 만들거나, 80℃ 이상의 따뜻한 물에 5~10분 정도 부드럽게 만든 후 부착시킨다.


자연계의 흡착판


문어 빨판, 위키미디어: oughdrop12문어 빨판, 위키미디어: oughdrop12


자연계에서 흡착판을 이용하는 생물들이 많은데 우리가 잘 아는 문어, 빨판상어 등이 그들이다. 우리가 산낙지를 먹을 때, 그릇이나 입천장에 빨판이 척 달라붙는 경험을 한다. 아래 그림은 문어가 물체에 부착하는 원리를 보여주는데,  빨판(acetabulum)이 깔때기(infundibulum) 부분을 물체에 부착시킨 후 밀어내면서 내부 압력을 줄이는 것을 보여 준다. 여기서 응용되는 압력은 물속에서는 수압이고 물밖에서는 대기압이다.


Octopus sucker operation, 위키미디어: PePeEfeOctopus sucker operation, 위키미디어: PePeEfe


우리가 동물의 왕국 같은 자연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보는 빨판상어가 대표적인 예이다. 빨판상어는 경골어류 빨판상어과(Echeneidae)에 속하는 어류로 이름은 상어지만 연골어류에 속하는 상어와는 전혀 다른 어종이다. 우리가 자연사 박물관에 가면 상어이빨만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상어가 연골어류라서 뼈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빨판상어는 뼈가 있다.


빨판상어는 머리 위에 제1 등지느러미가 변형된 타원형의 빨판이 있다. 중앙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20~28개 정도의 흡착판이 있어 자유롭게 다른 상어나 고래, 거북이에게 몸을 붙일 수 있다. 흡착판의 역할은 대형동물에 부착하기 위한 것으로 거머리처럼 피를 빨지는 않는다. 빨판상어의 행태는 대형 수중포식자와 다니면서 그들이 먹는 먹이의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폼나고 편하게 다니면서 포식자에게 잡혀 먹힐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undefined
undefined
빨판상어(Echeneis naucrates)의 빨판과 부착시 모습, 위키미디어: Richard ling(좌), Pearson Scott Foresman(우)
망둥어의 일종인 라운드 고비(Round goby)의 빨판, 위키미디어: Peter van der Sluijs망둥어의 일종인 라운드 고비(Round goby)의 빨판, 위키미디어: Peter van der Sluijs


네이처지에 발표된 국내 연구진의 빨판 연구


2017년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연구팀은 2017년 문어 빨판의 흡인력의 비결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물속에서도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고점착 패치 소재를 개발했다고 국제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기존의 흡착판은 표면이 젖으면 점착력이 사라지고 제거한 후에는 점착면에 끈적한 오염물을 남기는 한계가 있었다.


처음에 소개한 바와 같이 문어 빨판의 흡착원리는 표면에 흡착된 빨판에 누르는 힘을 가하면 흡착판 내 수분이 빠져나가고 일부 수분이 표면장력에 의해 흡착판 내부에 들어와서 깔때기 주변에 모이게 된다. 이때 누르는 힘을 빼면 표면과 흡착판 내부 사이의 공간이 진공상태로 되면서 흡착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어빨판의 응용연구, 출처: Sangyul Baik et al. 2017문어빨판의 응용연구, 출처: Sangyul Baik et al. 2017


이 원리를 응용하여 연구진이 개발한 가로, 세로 3cm의 인공패치는 물속에서 0.5kg을 들어 올리는 점착력을 보였다. 접합력을 측정하는 단위인 N/㎠로 측정한 결과, 공기 중 유리 표면에서는 3, 물속 유리 표면에서는 4, 기름 속 유리표면에서는 15의 점착력을 나타냈다. 인체의 피부는 물과 기름이 있는 환경인데 이에 적합한 접합력을 보인 것이다. 당연히 떼어낸 후에도 이물질이 남지 않는다.


연구를 진행한 방창현 교수는 "사람 피부와 같이 거칠고 유분이 있는 표면에도 효과적으로 점착하기 때문에 추후 피부에 붙이는 의료용 생체신호 모니터링 소자의 부착 소재나 약물을 탑재한 창상치료 의료패치 등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응용분야 확대가 기대된다.

 



흡착판과 물체 사이에는 이물질이 없어야 음압이 잘 생긴다. 그래서 흡착판을 붙일 때 부착면을 잘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돈관계, 애증관계, 친소관계 등이 중간에 끼면 서로 간의 관계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나의 마음이나 얼굴에 이물질은 없는지 잘 살펴봐야겠다.


참고문헌


1. Sangyul Baik, Da Wan Kim, Youngjin Park, Tae-Jin Lee, Suk Ho Bhang & Changhyun Pang,  A wet-tolerant adhesive patch inspired by protuberances in suction cups of octopi, Nature volume 546(7658), pages396–400, June 2017

DOI:10.1038/nature22382

2. 문어 빨판처럼 물속에서도 찰싹 달라붙는 소재, 세계 최초 개발, 동아사이언스, 2017.6.15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매거진의 이전글 LA는 왜 산불에 취약한가 - LA 산불의 과학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