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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녹스, 금은 무사할까?

생활 속 과학 이야기

by 전영식

금값이 연일 금값이다.

트럼프가 두 번째로 집권하면서 각종 관세 정책을 쏟아내 수입품에 의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71년 닉슨 정부 때 '금 태환(兌換, convertibility) 정책'을 포기한 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금만 한 안전자산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금을 가지고 계신 분은 당분간 매매를 고민해 보시기 바란다. 트럼프 정부는 이제 출범했고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025년 2월 19일 대통령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우린 포트 녹스에 갈 겁니다. 금이 거기 있는지 확실히 해 둬야 합니다."라고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포트 녹스의 모든 것이 무사하기를 바라지만 그곳에 금이 없다면 매우 화가 날 것"이라고도 했다.


포트 녹스

포트 녹스의 금괴 보관소 건물, 위키미디어: John Coffman


포트 녹스(Fort Knox)는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남쪽에 있는 미국 육군 기지로 녹스 요새라는 뜻이다. 남북 전쟁 당시인 1861년에 건립되었으나 현재의 모습은 1918년에 다시 건설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름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활약한 장군이자 초대 전쟁 장관 헨리 녹스(Henry Knox, 1750~1806)에서 따왔다. 루이빌 시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40마일(약 64km) 거리에 있으며 차로 50분 정도 소요된다.


포트녹스로의 금 이송을 위해 금괴를 기차에 싣고 있다, 1941, 위키미디어: United States Post Office Department


이 기지 옆에 뉴욕의 연방준비은행과 함께 미국 재무부가 관리하는 금을 보관하는 미국 금괴 보관소(United States Bullion Depository)가 있는데 이를 또한 포크 녹스라고 부른다. '포트녹스'라고 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이 금보관소가 더 알려져 있다.


열차로 이송된 금괴를 포트녹스로 옮기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1941, 위키미디어: United States Post Office Department


포트 녹스 금 보유고는 1936년 조성됐다. 뉴욕·필라델피아 같은 대서양 연안 도시에 보관되어 있던 금을 외적의 침입이 닿기 힘든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가려진 내륙 깊숙한 곳으로 옮길 목적이었다. 조선왕조가 내륙 깊숙한 곳에 왕조실록 복사본을 옮겨 보관한 것과 같은 목적이다. 화강암 건물 안 지하 금고의 문 무게만 22톤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2차 대전 때에는 미국 헌법, 독립선언서 원문 등 미국의 각종 보물들도 보관했다.



'포트녹스만큼 안전하다'

Paul Robinson, public domain

당연히 미국에서 가장 많은 금괴를 보관한 국고인 만큼 강도들이 눈독을 들일 법 하지만, 이곳에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고 보안 등급을 자랑하는 연방 시설물인 데다 앞은 미 육군 전차 승무원을 양성하는 기계화학교, 기갑부대가 있다. 당연히 실탄을 장전한 총기로 무장한 조폐국 경찰관들이 겹겹이 버티고 있으며, 담에는 전기가 흐르고 철조망과 외부 경계벽 사이에는 지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화강암을 덧댄 콘크리트 2층 건물인 보관소는 겹겹이 깔려있는 센서들과 1미터 이상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벽이 감싸고 있다. 금고는 두께가 21인치(53.3센티미터)로, 드릴과 토치로도 뚫는 것이 불가능하다. 중앙금고 문의 무게는 22톤이고 금고의 덮게는 64cm이다. 정식으로 열려면, 직원만이 각각 아는 다이얼을 입력한 다음 100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지붕은 20톤의 방폭형 게이트이고, 레이저와이어와 지진계가 설치되어 은밀한 침입을 감시한다. 얼마나 보안이 철저한지 '포트녹스만큼 안전하다(as safe as Fort Knox)'는 말도 나올 정도다.


미국 금괴 보관소 안내문, 위키미디어: Chris Light


미국의 금 보유량


2024년 4분기 미국의 금 보유량(중앙은행 보유하거나 관리하는 국가의 금)은 8,133.5톤인데, 그중 연방정부 보유량이 약 2,200톤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보유분 중 상당량을 이곳에 보관하리라 추측한다.


미국 화폐주조국에 따르면 포트 녹스에는 4,175.9톤(1억 4,730만 온스)의 금이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2025년 2월 17일 뉴욕상업거래소의 4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은 온즈당 2,911.40달러를 기록했다. 온즈당 3,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한데 가능하다고 본다. 포트 녹스의 금을 온즈당 3천 달러로 환산하면 약 4,420억 달러에 달한다. 원화로는 636조(1439월/USD)에 달한다. 2025년 우리나라 정부가 편성한 예산이 677조 원임을 비교하면 규모를 알 수 있다. 참고로 현재 전량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한국의 금 보유량은 104.4톤 정도다.


금이 비수익성 자산임에도 미국이 이렇게 금을 많이 가진 이유는 미국 달러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미 이 요새에 금이 없다는 음모론도 있다.


포트 녹스에는 금이 없다는 음모론


폭트 녹스에 대한 접근이 엄격히 제한되고 연례 감사가 이뤄지지 않아 미국에선 종종 금이 그곳에 실재하지 않는다는 음모론이 주기적으로 제기된다. 미국 정부가 국제 시장에 개입해서 금시세를 조작하고 투기하다가 실패해서 모두 잃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오래전부터 돌던 소문이지만, 어디까지나 근거가 매우 희박한 음모론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음모론이 퍼진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어서, 독일이 뉴욕 연준에 맡긴 금과 관련해서 독일로 실어 나르는 등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미국은 맡긴 당사자들에게도 서류로만 보여줬기 때문이다.


포트녹스는 관련된 음모론이 끊이지 않자 1943년에 의원과 기자들을 초청하였고, 1974년에는 조폐국 간부들과 민주당, 공화당의 중진들, 켄터키 주의 상원, 하원의원들과 주지사를 초청한 적이 있으며, 이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7년 스티븐 므누신 당시 재무부 장관이 켄터키 주지사, 의회 대표단과 함께 포트 녹스를 찾아 “금을 확인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철저한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이유는 내부구조 등 기밀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89년 역사상 단 세 차례만 개방된 탓에 음모론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17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포트 녹스의 금이 도난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가 장담하나. 그 금은 미국인들의 재산으로, 아직 그곳에 있기를 희망한다”는 게시물을 SNS에 올려 관심을 증폭했다. 이번에 누가 가서 확인한다고 음모론이 잦아들 것 같지는 않다.


포트녹스의 금이 있는지 있다면 순금인지, 순금 기준으로 얼마가 있는지 확인해 보면 쉬울 것 같지만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다 들어내고 하나씩 셀 것인지 샘플만 조사할지, 내 생각에는 뭘 해도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포트녹스에 금이 있어도 웃기고 없어도 웃기는 일이다. 일단 벌이고 보는 두 정치인(이제 머스크는 정치인이다)의 언행을 보며 극도로 불안해지는 세상의 불가피성을 본다.


트럼프의 노림수, 금자산 재평가?


미국 화폐주조국에 따르면 포트 녹스에 1억 4,730만 온스의 금이 저장돼 있다. 이는 재무부가 관리하는 금 보유량의 약 절반이다. 미국 정부는 이 금의 장부 가격을 온스당 42.22달러로 계산해 포트녹스에 62억 달러 상당의 금을 보유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시가인 온스당 약 2,900달러로 계산하면 4,270억 달러에 이른다. 그 차액이 무려 4,200억 달러가 넘어 이걸 이용하여 연방의 재정부채를 축소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길이, 폭, 두께가 18 X 9 X 4.5㎝, 무게 12㎏짜리인 금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포트녹스는 많은 사람에게 침샘과 함께 상상력을 자극했다.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은 1959년 포트 녹스의 금고를 배경으로 한 소설 <골드핑거>를 썼다. 악당 골드핑거가 자신이 가진 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포트 녹스의 금을 오염시키려다 제임스 본드인 007에게 저지된다는 소설은 1964년 숀 코너리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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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허튼의 연방준비은행 과 금보관창고 , 위키미디어: Beyond My Ken, 연준


미국 내의 금 보관소는 이외에 뉴욕에 위치한 연방준비은행(연준) 금고에도 있다. 지하 24m에 설치된 122칸의 금고에 6,200톤의 금괴가 보관돼 있다고 전한다. 25톤 덤프트럭으로 248대 분량이다. 영화 <다이 하드 3>(1995)에서 테러범들이 테러 행위로 대혼란을 일으키고 침입해서 금괴를 털어간 게 연준의 이 금고다. 14대의 덤프트럭으로 금고를 턴 일당은 브루스 윌리스에게 일망타진당한다. 이곳은 미국 소유의 금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소유의 금을 보관해 주고 있다.


한국의 금보유량 & 영란은행


Bank of England Building, London, UK , 위키미디어: Diliff


한국은행은 소유하고 있는 금괴 104.4톤(2023년 기준) 가량을 영란은행(英蘭銀行, Bank of England)에서 보관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국가에서 29위 정도의 보유량이다(출처:세계금위원회 gold.org).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마지막으로 금을 산 것은 2013년 20톤이다. 매입당시 가격으로 환산한 금은 47억 9,000만 달러이다. 한은의 입장은 금 가격이 단기적으로 등락이 심한 투기자산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이 낮아 외환보유고를 구성할 때 비중을 키우기 힘들다고 한다.


한은이 영란은행에 보관하는 이유는 금 실물시장은 영국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고, 금 거래의 대부분이 영란은행 금 계좌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금 대여 수수료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30여 개국 중앙은행이 같은 이유로 영란은행에 금괴를 보관(2025년 1월 말 현재 영란은행 금 보유량 5,264톤)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영국으로 금괴를 직접 보낸 것은 7.4톤가량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영란은행을 통해 이후에 사들인 것이다.


영란은행 박물관에서 체험해 볼 수 있는 스위스 PAMP사의 금괴, 위키미디어: Avelludo


한은은 1990년부터 영란은행에 금을 보관하고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금괴가 정말로 보관되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재기된 적이 있다. 영란은행은 보안상의 이유로 비공개하고 있어 정부 및 언론사 그 누구도 2023년 이전까지 시찰해 본 적이 없었다. 영란은행에 물어보면 안전하게 보관 중이라는 말만 듣고 믿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한 때 영란은행에 있는 금괴를 인출하여 한국으로 반입할 방안을 모색해 보았으나, 뚜렷한 대안이 없어 무산되었다.


다행히 2023년 한은이 영란은행을 직접 방문해 한은이 위탁한 금이 영란은행에 실물로 전량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으며 미리 약속한 금괴 200개와 현장서 무작위로 뽑은 5개 등 총 205개(대여금을 제외한 한은 보유분의 3.05%)에 대한 표본 검사로 진품 감정까지 마쳤다고 한다. 당시 한은 관계자는 "골드바 표면에 기록된 관리번호, 제련업자, 순도 등 정보를 장부와 비교했고, 동시에 표면의 긁힘, 실금 등 손상 여부도 함께 점검했는데 모두 양호했다"면서 "무게를 측정한 30개의 경우에도 모두 이상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3개의 골드바는 제련업자 표기가 장부와 달랐는데, 이는 제련업자는 같지만 공장소재지가 다른데 기인한 단순 오기였다고 설명했다).


금의 채굴량


미국지질조사소(USGS)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금 채굴량은 3,220톤으로 전년 대비 50톤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됐다. 1위는 380톤의 중국으로 미국보다 2배 이상의 채굴량을 기록했다. 그 뒤로는 러시아, 호주, 캐나다, 미국, 가나, 카자흐스탄의 순이고 이들 7개 국가가 전 세계 채굴량의 약 50%를 차지했다.


채굴된 금은 보석류로 45%가 쓰이고 중앙은행 및 기관 매수가 21%, 금괴 19%, 금화나 메달 등에 7%가 쓰이며 전기전자제품에는 6% 정도 사용되는 것으로 보고됐다.


세계 금 채굴량은 2018년경부터 정체되어 2024년까지 비슷한 상황이다. 이미 유망한 지역에 대한 탐사가 끝나, 당분간 새로운 대규모 광산의 발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또 금 채굴은 탐사에서 개발까지 10~20년이 소요되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공급량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한때 세계 6위 금 생산국이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금광개발 열풍이 불어, 1933년 한 해에만 3,200군데의 금광이 개발되었고, 1939년에는 31톤의 금이 생산되어 세계 여섯 번째 금 생산국이 되었다. 물론 그 후엔 자원 소진 및 중국 등 후진국의 생산 증가로 광산업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야외조사 나가보면 어느 마을이나 옛날 금 캐던 곳 물어보면 어르신들이 곳곳의 장소를 알려줄 정도로 당시의 채굴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금 생산량은 2022년에 128kg으로 보고되었다. 이 중 80%는 LS니꼬제련 온산제련소에서 나머지 20%는 고려아연에서 보고되었다. 구리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는 금이 이에 해당된다.



금값이 급등함에 따라 영란은행에 보관 중이던 금이 인출되어 미국으로 대이동 하는 등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원자재 과세 및 인플레이션 염려가 증가하면서 2024년 말부터 미국의 금값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영란은행의 인출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영란은행의 금 재고에 대한 의문, 파산에 대한 해묵은 음모론도 불거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세계적인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나 휴광 중이던 광산을 재개발한다는 뉴스나 도시 광업으로 금을 손쉽게 회수하자는 등 부수적인 이야기가 뒤따를 것이다. 금의 생산은 한정적이지만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폭발하며 벌어진 이번 에피소드는 금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보여주는 좋은 계기이다. 한때 인기 높았던 다이아몬드가 인공적으로 생산되면서 가치가 시들해졌다. 하지만 금(골드)은 영원할(forever)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문헌


1. USGS, National Minerals Information Center, Gold Statistics and Information, 2025. Jan.

2. 전봉관 , 황금광시대, 살림, 2005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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