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버스에서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다.
오늘도 무질서 속에 질서가 유지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 한다. 모두가 밀착되어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데, 누군가는 내리고 또 새로운 누군가는 오른다. 출퇴근길의 만원버스 안에서 거의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혼잡함 속에서도 내리는 사람을 위해서 조금씩 양보하여 길을 만들어 준다. 문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잠시 내렸다가 다시 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억지로 끼워 타는 공간에서도 교통카드 인식은 다들 빠뜨리지 않고 잘한다. 카드 인식기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교통카드를 받아서 대신 찍어주기도 한다. 배려해 주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4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지금의 직장에는 주차장 여건이 마땅치 못하다. 고정된 출퇴근 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움직이는 시간도 늘릴 겸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하고 있다. 걸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고, 만원버스에서 지하철로 환승한다. 다시 걸어서 직장까지 가면 50분 안팎이 걸린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대중교통이 좋다는 것은 늘 상기하지만, 사무실에 도착하면 아침부터 지쳐있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 시간도 즐기려고 한다. 이제 환승통로는 몸이 알아서 갈 만큼 익숙해져 있고, 무엇보다 '매일 출근하여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너무 복잡하여 타지도 못하고 버스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인파를 헤치고 탈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시간 여유가 충분하게 집을 나선다. 차내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여름이 지나면서 만원버스 타기가 조금 수월해졌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이제 이런 출근길도 얼마 남지 않았고, 다시 이런 일상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조그만 걱정도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맛보는 잠깐의 여유와 커피 향이 나중에는 추억으로 다가 올 수도 있겠지.
복잡한 버스 내에서 노약자들에 대한 양보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양보를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아직은 건장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 더 괴로울 것으로 보이는 노인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것이 아니다.
어린 학생들이 부대끼며 가는 모습을 보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늦도록 공부하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텐데 등하교 길까지도 편안하지 못한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그 와중에 시험기간인지 요약한 종이를 열심히 보면서 가는 것을 보면 대견하기도 한다. 그저 젊음으로 인내하기를 바랄 뿐이다.
지하철에서는 분홍색 의자 캠페인이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복잡한 중에도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전혀 그 자리에 맞지 않은 사람이 앉아 있을 때에 보내는 시선이 곱지 못함은 어쩔 수 없다.
분홍색 배지에 대한 홍보도 조금 더하고, 배지를 가진 분들은 조금 더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개인만의 문제인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다 같이 미래를 생각하면서 배지 가진 사람들을 축하해 주고(마음속으로라도) 배려해 주는 사회분위기가 조금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행동은 가까이, 작은 것부터 실천이 중요하다.
대중교통에서 보는 또 하나 느끼는 것이 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이 유독 많다는 사실이다.(우리나라는 더 이상 세계 속에서 고립된 소국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시민의식이 그만큼 성숙한 것인지, 대화도 조용조용하고 그것도 잠깐에 그친다. 전화통화도 나이 든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조심하는 것을 자주 본다. 이제는 서로가 같이 살아가는 사회 일원임을 느끼고 있다.
사실 버스에 타면 대부분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서 타인들에게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각자가 보고 있는 분야는 다르겠지만 긴장을 낮추거나 생산적인 일들이겠거니 한다. 단지 이 복잡한 공간에서도 고립된 현대인의 모습이 보이곤 한다. 대중교통, 혼잡함 속에서 고림감이라니.
출퇴근길을 내 시간으로 유용하게 하는 루틴을 만드는 것도 좋다. 얼마 전부터 비교적 여유가 많은 퇴근길에는 휴대폰을 이용하여 구독 중인 오디오북을 듣는다. 책 읽어주는 분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면 그 자체가 오늘의 피로를 풀어주는 즐거움이다.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것으로 마음을 표시하는 정도지만 늘 감사함을 느낀다.
오디오 북으로 읽은 책 중에는 귀가 후에 컴퓨터를 이용하여 검색해 보는 것도 있고, 구매로 연결되는 것도 있다. 서점의 넘쳐나는 책 중에서 고르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소개받고, 주문한 책을 받고 펼친 페이지에서 동일한 내용을 보았을 때 감동도 작지 않다.
흔들리며 오가는 버스 안에서, 나만의 상상일 수도 있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쁨을 느낀다. ‘영원한 현역’으로 살아가자는 목표가 진행되는 동안 이 즐거움은 계속되겠지. 어차피 만족은 스스로에게 주는 위안이고 선물이니까.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매일 출근하여 갈 곳’이다. 그곳이 경제적인 보상과 사회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일자리’라면 더 좋을 것이다. 지금 지나는 길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잠시 후 끝날 수 있다. 그래서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매일 아침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사회 속의 일원임을 느끼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가꾸는(브랜딩 하는) 힘의 원천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길은 많다. 갈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과 어느 길을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