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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06. 2023

나와 닮아있는 타인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하루를 더 살아보게 하는 마음들



며칠 전 푸근한 인상을 지닌 아저씨 한 분이 세계여행 하는 영상이 알고리즘에 떴다. 호기심에 들어가 목구멍으로 후루룩 찰진 면발 넘기듯 몇 편을 연이어 보게 됐다. 아저씨는 영어가 서툴러 소통이 어려워 보였고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전무한 듯했다. 그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낯설고 초긴장 상태였다. 아! 저 긴장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너무 알 것 같아, 하며 화면 속에 빠져들게 된다. 상황은 거의 이런 식이었다. atm기에서 현금을 뽑기 위해 6군데 은행에 방문하고 7번째 시도한 기기에서 가까스로 현금 인출에 성공한다. 버스표 구입을 위해 같은 공간의 이곳에서 저곳, 저곳에서 이곳을 돌고 돌아 30분 만에 손에 표를 쥐게 된다. 그럼에도 아저씨는 얼굴의 구김 하나 없이 와! 해냈어! 잘했어!, 라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하하하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익숙한 공간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은 삶의 반경을 벗어난 곳에선 대단한 일이 되어버린다. 엄마의 첫 심부름에 약간 졸인 마음으로 혼자 시장으로 향하는 아이의 발걸음과 닮아있다. 몇 가지 구입 목록이 적힌 종이를 손가락을 오므려 힘 있게 잡고 이 길이 맞을까 신경을 한 곳으로 모아 나를 의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가본다. 도전하는 마음에는 진땀이 삐질삐질 솟고 입술은 금세 말라서 주머니 속 립밤을 꺼내 수시로 바르게 된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따라붙어서 그런가 보다. 액정 속 아저씨의 여행에 스며있는 설렘의 근육에는 힘이 좀 들어가 있었다.



제발 이번엔 돼라! 저쪽으로 가면 안 되는 것 같은데, 라며 어느새 그와 함께 발맞춰 여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 알았다. 우여곡절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의 얼굴엔 언짢은 기색 한 번 스치지 않았다는 것을. 순간 화면 속 삶의 시놉시스가 전광석화처럼 지나간다. 대체 어떤 마음을 갖고 살면,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면 저런 반응을 할 수 있는 걸까. 존경이 솟았다. 카메라로 찍고 있다고는 하나 말투, 행동, 표정 어느 곳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모습 그대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 그를 방구석 응원단이 되어 성원하고 일이 잘 해결되면 안도하고 마음이 놓였다.



몰입해서 보게 되는 포인트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눈앞에 마주하는 풍경마다 전심전력을 다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지금 행복과 부조화를 이루는 사람의 영역까지 행복으로 물들어 버리는 품이 넉넉한 행복이었다. 아저씨는 여행을 오기 전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해 몸을 크게 다치고 오랜 시간 집에 누워있어야만 했다고 했다. 그때 화면으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접했고 본인도 그와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고 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영상 편집을 공부하고, 일하며 마련한 돈으로 이곳에 왔다고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섞인 어조로 말했다. 돈 걱정이야 나중에 돌아가서 하기로 하고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꿈꾸던 일을 눈앞의 현실로 가져와서 그런 걸까. 아저씨는 무엇을 봐도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마음이 곤란한 일을 당해도 괜찮아 괜찮아, 하며 화낼 줄 모르는 사람처럼 웃어넘겼다.



의지할 이 하나 없는 망망대해의 고주가 되어 나만 믿고 어디서 지낼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어디를 갈지 등의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하고 행하는 것의 어려움과 외로움과 자유로움과 대견함을 품은 지난 여행에서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손뼉 치며 응원하고 행여 잘못될까 마음 졸였던 건 아저씨 안에서 본 나였던 건 아닐까.



살아오며 공감받고 용기를 얻고 위안이 되었던 대상은 나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존재였다. 낯설지 않은 빛깔에 저 사람 뭔가 인간적이네, 하고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도, 그럼에도 외면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해보는 사람. 궁금함이 두려움에 앞서 어디로든 자유롭게 가보는 사람. 타인의 시선이 마음에 꺼려지지만 그 나름의 길을 묵묵히 가려는 사람. 누구보다 약한 마음을 지녔지만 있는 배짱, 없는 배짱 모두 모아 주체적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 그런 존재에게 이 마음은 자석처럼 끌려 찰싹 붙어있다. 거짓된 마음 1도 보태지 않는 순도 100%의 티 없는 열원을 건네게 된다. 그들을 보며 나도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 저 지평선 너머로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해하고 나도 곧 가볼 수 있을 거란 믿음. 내일은 오늘보다 더 포근한 볕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믿음. 이 어설프고 모자란 마음을 가진 존재도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어줄 수 있을 거란 믿음.


그들을 보며 돋아난 그런 믿음들이 나의 작은 용기를 단단하게 쌓아 올리고 하루 더 살아보자 다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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