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글을 한편 써야지', '책을 한 권 읽어야지', '미뤄둔 강연을 보고 정리해야지' 등 수많은 결심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별생각 없이' 이를 닦고, 샤워하고, 차 한잔 마신 뒤 책상 앞에 앉아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SNS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오전 시간이 지나간다. 점심을 챙겨 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 산책을 하면 오후 시간도 흘러간다. 의도하지 않으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책을 읽는 것보다 편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계단으로 오르는 것보다 편하며, TV를 켜놓고 앉아있는 것이 글을 쓰는 것보다 편하다. 의도하지 않으면 뇌는 자동으로 작동하게 된다.
「메모 독서법」의 저자인 신정철 작가의 '메모습관의 힘' 세바시 강연에서 작가는 매주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주말마다 공연을 관람, 게임도 즐겼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어느 날 자기 삶에 자기가 만든 것은 없고, 남들이 만든 것만 소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만들 수는 없다. 인간의 정체성은 생산을 통해 형성된다"라고 신영복 교수는 그의 저서 「담론」에서 말했다. 감탄하는 삶은 당시엔 행복할지 몰라도 공허하고 인생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신정철 작가는 독서 메모를 시작했다. 독서 메모를 2년 정도하고 나니 글을 쓰게 되었고, 소비하는 삶에서 생산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내면을 독서와 생각으로 채운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며,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내면이 단단하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자신의 내면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는 중요하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만이, 자기 본연의 깊은 욕망에 닿고, 자기 뿌리에 다다를 수 있다"라는 철학자 알베르트 키츨러의 말처럼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는 저녁 6시 이후로는 어떠한 약속도 잡지 않는다고 한다. 3~4시간 동안 본인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과 논문을 쓰고 강의 준비도 한다. 그는 혼자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최인아 책방 대표의 칼럼, '자기 인생의 예언자가 될 때'에서 최인아 대표는 '자기답게 사는 방법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인식하고 그 신호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 북소리'를 듣고 자신의 길을 새로 열었듯이 말이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성장과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가장 행복한 삶은 지적인 능력이 풍부하여 스스로 사색하고 판단하는 삶을 살면서 세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춘 삶을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했다. 무게 중심이 바깥에 있는 사람은 출세, 승진, 명예, 부 등을 추구하며 각종 모임에서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무게 중심이 안에 있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예술, 시, 문학, 철학 등을 가까이한다. 사람과의 만남을 줄이고 책을 읽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운다. 고독은 자기 내면 깊숙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친구이다.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 나오는 말이다.
필자도 사람과의 만남을 줄이고 나와 있는 시간을 만든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로 정리한다. 강의를 듣고 되새기고 정리한다.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새롭게 구성한다. 나와 만나는 시간은 즐겁다.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이런 과정이 나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해 나갈 힘이 될 것이다.
일을 할 때도 내재화된 지식을 실제 적용해 보고 실현하려고 애쓴다. 일의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서 해야 할 일과 일정 등을 계획한다. 계획한 일을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성과를 내기 위한 방법을 공부하고 적용하는 것과 과거의 경험만으로 현재를 판단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실패할 가능성이 적을까? 과거의 경험은 과거에 적용했던 기준이다.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정답은 될 수 없다.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삶과 일에서 더 세련되게, 멋지게, 수준 높게, 더 잘하기 위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24년 새해에는 물 흘러가듯 '별생각 없이' 외부 자극에 의해 반응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질문해 보고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하루를 살고 싶은지를 묻는 삶을 살아보자. 고독은 묵묵하고 조금은 외롭지만 비범함과 행복을 가져온다. 온전히 나와 싸우는 일은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