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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年 中心

by 허니

어느 쪽이 먼저일까요? 오른쪽? 왼쪽? 아니면 동시에? 혹시 이것이 무엇인지는 아셨나요? 시작이 온통 물음표라 당황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음악 기호입니다. 셈여림의 미세한 ‘변화’를 지시하는 용어라고 하지요. 이런 용어는 보통 약자를 사용하지만 때로는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소리의 커지고 작아지는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위의 것은 바로 이러한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왼쪽의 것은 크레셴도(crescendo), ‘점점 세게 연주한다’입니다. 일반적으로 악보의 특정한 부분부터 그 세기를 점점 세게 한다는 기호입니다. 오른쪽의 것은 디크레센도(decrescendo), 혹은 디미누엔도(dim.)입니다. 즉 악보의 어느 부분에 그 기호가 있으면 그때부터는 ‘점점 여리게 연주’ 해야 합니다.


성당에서 10년 넘게 성가대에서 성가를 부르고 있습니다만 영 솜씨가 시원치 않습니다. 처음에는 악보를 보는 것도 미숙하고 어느 부분에서 치고 들어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박치’였습니다. 박자 관념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가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다른 건 몰라도 이 기호만큼은 ‘쏙’ 들어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쉬운 ‘지시어’라 생각했습니다. 지휘자의 사인도 봐야 했지만 우선은 이 기호를 파악하고 그대로 해냈다는 겁니다. 40여 명의 성가대는 미사에서 중요한 전례를 담당하고 있지만 초보 성가대원은 그냥 때에 따라 소리를 내고, 혹은 소리를 줄이는 그야말로 ‘소리통’ 노릇만 한 셈입니다.


‘<’, 이 기호는 중년의 어느 순간의 시간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기대를 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가 모두 이 ‘기호’를 알고 있습니다. 인사예절은 물론 거래처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주고받는 명함 예절 등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근무시간, 근무일지, 목표 실적, 평가로 이어지는 이러저러한 시간들이 매일 매월 매년 점점 더 강도를 더해 갑니다. 어느 해에는 월별로, 어느 해에는 분기별로, 또 어느 해에는 반기별로 목표 실적을 설정하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에너지가 있는 현장에 꼭 있어야만 헸습니다. 치열한 그곳에서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그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나가 산에 오른다고 합니다. 지기 싫어하고 승부욕이 강한 사람들은 더욱더 남보다 앞서 나아가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점점 세게’ 밀어붙이는 겁니다. 자신을 담금질해야만 오를 수 있고 앞서 나아간다는 진리는 ‘나’를 정상에 서게 합니다. 그곳에서 소리치는 희열, 그것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입니다. 나름대로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치달을 때 우리는 힘에 부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도 그렇습니다. 호흡이 일정치 않습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 이 기호가 있으면 ‘소리’ 냅니다. 점점 더 세게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어 마디 지나고서는 지휘자는 사인을 보냅니다. 여기서 멈추라고. 여기 까지만 이 기호였답니다. 움찔했습니다.


산에 오르는 여정, 그 긴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보내고 또 여러 애증으로 점철(點綴) 된 사회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혹 가수 양희은 씨 아시겠죠? 그분이 부른 노래 중에 ‘한계령’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하덕규라는 분께서 작사와 작곡을 하셨지요.


한계령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이 기호의 쓰임을 말하는 듯합니다. 늘 느끼는 감정이기는 합니다만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꼭 인생의 어느 지점을 얘기하는 듯합니다. “이제는 됐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무욕(無慾)의 시간, 더 이상의 욕망도 없는 시간, 더 오를 곳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치열함과 처절함 그리고 생존을 염려해야하 는 시간을 뒤로하고 잠시라도 숨을 고르는 하프타임, 그 시간에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고. 그러나 내려갈 힘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산에 오를 때 너무 많은 열정으로 ‘끝’까지 올라왔던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오르는 것보다 잘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내려가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죠.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高山)을 등정하는 산악인들은 흔히 정상에 서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베이스캠프까지 무사히 내려와야 ‘등정 성공(登程成功)’이라고 얘기합니다.


‘>’ 기호가 있으면 어느 특정 지점까지는 점점 여리게 소리 내야 합니다. 중년에 다시 생각해 봄직한 ‘지시어’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중년이 어느 특정한 시기부터는 내려오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앞만 보고 달려왔을 중년의 시간이 애잔함을 더합니다.


노래를 부를 때 ’>’ 를 따르기가 영 쉽지 않았습니다. 힘을 빼거나 집중을 해야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지점까지 일정하게 소리를 줄여 나간다는 게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마치 인생의 정점에서 모든 걸 내려놓는 허전함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생존의 현장에서 조금씩 자신의 힘이 부치거나 혹은 또 다른 기회의 장(場)이 열릴 때에는 꼭 ‘>’ 기호를 기억하기시 바랍니다. 이제는 조금 더 관조(觀照)하고 여유 있게, 그리고 유연한 중년이었으면 합니다.


가끔씩 이 두 기호가 연속해서 나오는 악보를 보고 노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점점 세지고 어느 부분에서는 점점 여리게 표현하고 또 그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롤러코스트 타는 느낌입니다만 그때 모두의 소리는 정말 근사합니다. 마치 인생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합니다. 지휘자의 사인을 보지 않고는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이럴 때는 슬쩍 외면하면서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모릅니다. 자신이 있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는 <점점>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산의 오름과 내림, 혹은 소리의 여림은 중년을 상징하는 듯해서 단어들이 정겹습니다. 혹 당신은 < > 중 어디에 계신가요? 아직 모르시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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