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모르긴 해도 집에 책상이 없는 집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은 물론이거니와 데스크 탑이나 노트북을 올려놓는 용도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슷한 기능면에서 식탁만 한 것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자녀들이 있는 집에서는 책상은 필수입니다. 28년 전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책상을 구입하려다 보니 생각한 것보다 상당히 비싸다고 생각되어 그 당시 유행하던 맞춤형 책상을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크게 맞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는 “방이 좁은데 책상이 크면 더 좁아 보인다”라고 처음에는 반대를 했었지만 당시에는 곧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이후 책상의 크기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올려놓고도 책을 봐야 할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법 넉넉하게 맞추었습니다. 가로는 190cm 세로는 50cm의 길이로 적당한 두께의 나무를 골라 양쪽에 받침 기능을 할 수 있는 서랍을 짜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유리를 맞추어 보니 아주 심플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책장도 3개를 같이 주문 제작했습니다.
그 책상 위에서는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이 책상의 한 구석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책상 길이가 길어 두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다 보니 때로는 paper를 쓰거나 시험을 준비하는 때가 많이 있어 제법 쓸모가 많았습니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서로 다른 책을 보면서도 차를 같이 마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들 녀석이 학교 숙제를 할 때에는 같이 책을 보면서 알려주기도 하고 뒤편에 서 있는 책장으로 눈길을 주도록 했습니다. 같이 앉아 공부를 하고 이러저러한 책을 읽는 등 부자(父子) 간 많은 사연과 시간이 책상 위에 흘러갔습니다. 아들 녀석은 중학생이 되고 그 책상의 공동 지분을 갖고 있는 아빠는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그 공간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준비 등으로 아들 녀석이 혼자 사용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들 녀석은 책상을 혼자 차지하고 고교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때로는 아들 녀석의 친구들이 집에 몰려와 가방과 옷을 잔뜩 얹어 놓아 여러 용도로도 사용되었던 책상의 수고로움은 무생물이기는 하지만 참 고마운 '식구'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책상은 모름지기 튼튼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 써야 합니다. ‘쓸모 있다’와 ‘쓸모없다’라는 것은 순전히 사용자의 판단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은 중요합니다. 가능하면 책상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냥 책과 관련된 것이면 좋을 듯합니다.
책상이 집에 들어와 앉아 있었던 시간이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아들 녀석의 공부방 이곳저곳을 따라 전전(轉轉)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티고 있습니다. 어느 사관학교 BOQ에서도 3년 동안 아들과 같이 장기 근무를 했습니다. 어느덧 아들 녀석의 학위 취득까지 동반(同伴)해서 긴 시간 동안 같이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상은 아버지와 아들, 대(代)를 이어 학위 취득자를 낸 영특한 파트너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혼자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 녀석이 살고 있는 집에 가끔씩 들르곤 합니다. 이곳저곳을 살피다 보면 눈길이 가는 방이 있습니다. 방 한편에 책장을 배경으로 하고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으로 그 책상이 길게 누워 있습니다.
문득문득 드는 생각입니다만 ‘무던하다’는 말이 꼭 어울리는 책상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들 녀석이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펼쳐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같이 있습니다. 아들 녀석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꼭 한 번 마주하는 친구인 셈입니다. 한편으로는 아빠가 아들에게 보내는 ‘안녕!’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이기도 합니다. 그냥 말없음이지만 그가 아들 옆에 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