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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지 Sep 15. 2022

한국어 강사의 운동화

오늘의 어휘: 9800원


※다음 밑줄 친 부분과 의미가 비슷한 것을 고르십시오.

   박봉의 한국어 교사라면 9800원짜리 운동화 신어야지.                    

   

 ① 신을 만하다   ② 신어야 한다   ③ 신기 마련이다   ④ 신을 수밖에 없다



  ―어? 신발 샀나 보네.

  오랜만에 옛 동료들과의 식사. 톰과 제리처럼 서로를 놀리고 놀리는, 그래서 더 허물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라 즐겁고 편했다. 식사를 마치고 2차 커피숍으로 가는 길에, 새로 사서 신은 내 신발을 보고 선배가 알은척을 했다.


  ―어때요? 9800원인데, 예쁘죠?

  가격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내 딴에는 가심비 좋은 상품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즐거운 배부름에 잠시 경계 태세(?)를 허문 게 잘못이었다.


  ―흠, 박봉의 한국어 교사라면 9800원짜리 신어야지.

  선배의 우스갯소리에 일행 사이로 웃음이 번졌다. 오랜만에 제리의 본능을 장착하고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던 선배에게 때마침 좋은 건수를 제공한 셈이었다. 사실 평소 티격태격 콤비를 이루던 선배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는 했다. 선배가 정색한 얼굴로 “와, 예쁘다!”라고 했으면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 풀이]


  그날 선배의 말은 내게 어떤 상처도 입히지 않았다. 오히려 모임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준 즐거운 농담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선배는 농담이었겠지만 사실 한국어 교사의 현실을 제대로 짚은 말이었다. 

  201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때의 내 연봉은… 같이 사는 식구들과 먹고살 정도는 됐다. 그래도 그때도 많다고 생각해 본 적 없던 그 연봉을, 한국어 강사로 전업하면서 한 번도 넘어 본 적이 없다. 넘기는커녕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언감생심이다.

  

  아홉 달만 일하고 석 달은 백수

  한국어학당 강사가 받는 돈은 대학마다 천차만별이다. 시간당 4만 원 이상인 곳도 있고, 2만 5000원인 곳도 있다. 3만 원에서 3만 5000원 정도인 곳이 대부분인 듯하다. 올해 새로 통과된 2023년 최저 시간급이 9,620원이니 그에 비하면 아주 높은 거 아니냐고? 하지만 대학교는 한국어 강사에게 주 15시간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최대치가 14시간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어 강사들이 2개 대학 이상을 ‘뛰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생활이란 걸 할 수가 있다. 어쩔 수 없이 한 개 대학만 나가는 사람도 물론 많을 것이다.

 시간당 3만 원에서 3만 5000원을 받고 최대치인 주 14시간씩 4주를 수업했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168~196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물론 8.8%의 세금을 제하기 전의 금액이다. 이것도 어떤 한국어 강사에겐 꿈의 금액일 수 있다. 신임 강사들은 주당 14시간이 아니라 8시간, 12시간을 배정받기도 한다. 그럴 경우 기대할 수 있는 한 달 임금은 속수무책으로 내려간다.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이 금액도 1년 내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교 어학당은 보통 1년 4학기제로, 한 학기에 10주씩, 총 40주를 운영한다. 그러니까 한국어 강사는 1년에 40주 일하고 12주를 쉰다. 다시 말해 1년에 아홉 달만 수입이 있고 나머지 세 달은 백수인 셈이다.  


  고학력은 원하면서 임금은 저임금을

  아무튼 한 달에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임금을 받는 한국어 강사는 얼마짜리 운동화를 신어야 알맞은 것일까. 참고로 나는 다달이 우편함에 꽂히는 온갖 고지서의 세금도 내야 하고 부모님 생활비와 병원비도 대야 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그런 상황이니,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아서는 만 원짜리 운동화도 넘치는 사치인지 모르겠다. 그 선배, 탁월한 지적이었어!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한류의 뒷심을 담당하는 ‘일국의’ 한국어 강사씩이나 됐는데, 명품까지는 아니어도 웬만한 운동화는 부담 없이 사 신을 정도의 월급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더 나은 한국어 교육을 위해 연구하고 몰두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어학당 강사들은 대부분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교 어학당이 대학원 졸업자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학력을 요구하면서, 왜 저임금을 고집하는 것일까.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원하면서, 왜 전문가 대접은 해 주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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