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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지 Sep 22. 2022

대학의 이방인, 한국어 강사

오늘의 어휘: 초단시간 근로자

밑줄 부분에 나타난 나의 심정으로 알맞은 것을 고르십시오.                    

 명색이 한국어 교사인데 왜 이리 모르는 단어가 많은 것일까. 초단시간 근로자, 처음 들어 봤다. 하지만 사전에도, 근로기준법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① 답답하다   ② 민망하다   ③ 참담하다   ④ 부끄럽다



   대학은 왜 한국어 강사에게 주 15시간 이상의 수업을 안 주는 것일까. 그 정도 시간을 일할 수 있는 체력은 충분히 되는데. 그 정도 시간은 얼마든지 신나게 일할 수 있는데. 이전에 다녔던 직장에서는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가 디폴트값이었다. 

  배정할 수업이 충분하지 않아서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학당에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이 아주 없지도 않고 각 급마다 반도 계속 늘어난다. 그래서 모든 강사가 15시간 이상의 수업을 해도 좋을 상황이건만, 학생 수가 늘어나서 오는 경제적 풍요는 학교의 것이지 강사들의 몫이 아니다. 1인당 15시간 이상이 되지 않도록 신임 강사를 뽑아 수업 시수를 쪼개고 또 쪼개기 때문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한국어 강사는 초단시간 근로자잖아.


  ‘소인이 과문(寡聞)하여….’ 사극 대사라도 읊어야 할 판이다. 왜 이리 모르는 단어가 많은 것일까. 초단시간 근로자, 처음 들어 봤다. 하지만 사전에도, 근로기준법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그럼에도 ‘15시간 미만’이라는 규정은 한국어 강사의 수업 시수와 법적 지위를 정하는 금과옥조가 되고 있다. 한국어 강사에게가 아니라 한국어 강사를 고용하는 대학 기관에 말이다. ‘15시간 미만을 철폐하라!’며 분신할 결심이라도 해야 하나. 


[문제 풀이]


  근로기준법 2조 1항 9호는 ‘단시간 근로자’를 규정하고 있다. 즉 ‘1주 동안의 소정 근로시간이 그 사업장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 근로자의 1주 동안의 소정 근로시간에 비하여 짧은 근로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근로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얘기. 그러니까 통상 근로자가 1주일에 40시간을 일할 경우 근로시간이 40시간 미만인 사람은 ‘단시간 근로자’가 된다.  


  초단시간 근로자의 슬픔

  그런데 애석하게도(!) 한국어 강사는 이 단시간 근로자조차 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18조 3항은 ‘4주 동안(4주 미만으로 근로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을 평균하여 1주 동안의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제55조와 제60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해 놨다. 친절하게도 주 15시간 미만의 근로자들을 콕 집어 따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법에도 없는 ‘초단시간 근로자’라는 용어가 실무 차원에서는 필요했을 법하다. 

  그런데 이들에게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55조와 60조는 무엇일까. 바로 유급 휴일과 유급 휴가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니, 15시간 미만 근로자들은 유급 휴일도 없고, 유급 휴가도 없다. 뿐인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9조를 보면 ‘비상근 근로자 또는 1개월 동안의 소정 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는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에서 제외된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15시간 미만 근로자들은 직장인 자격의 국민건강보험도 없다. 이뿐이 아니다. ‘법대로’ 해서 퇴직금도 없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4조 1항에는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 사용자는 퇴직급여제도의 설정을 아니한다’고 딱 박혀 있다.


  대학 사회의 내로남불

  따라서 대학이 한국어 강사들에게 주 15시간 이상의 수업을 주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주 15시간이 되는 순간, 한국어 강사들에게 유급 휴가, 유급 휴일, 퇴직금, 국민건강보험 등의 복지체계를 마련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2년 동안 기간제로 근무한 강사들은 성가시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강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대학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더 추가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 근무하는 구성원조차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배출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제대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대학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언어도단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내로남불’의 최고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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