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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지 Sep 24. 2022

한국어 강사로 먹고살아 죄송합니다

오늘의 어휘: 생계형

(        )에 들어갈 가장 알맞은 것을 고르십시오.

   내가 지금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            )을/를 하기 위해서이다.        

   

   ① 자아실현   ② 생계유지   ③ 취미 생활   ④ 사회 기여



  어느 날 회의 자리, 한 선생님 입에서 낯선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 선생님은 ‘생계형’이라서 수업 시수를 좀 더 배려해 줘야 하는데….


  생계형? 한국어 강사가 되기 전 십수 년을 다니던 직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이었다. 그 선생님이 말하는 ‘생계형’이란 한국어 강사 수입으로만 생활을 하는, 또는 2개 대학 이상에 강의를 나가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배우자가 있어서 한국어 강사 수입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는 선생님은 이 생계형에 포함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선생님 기준에서는. 그 기준으로 보면 나는 생계형이었다. 그 기준으로 보면 그 자리에 있던 선생님 중 하필 나만 생계형이었다. 그 선생님은 결국 나 같은 처지의 사람을 신경 쓰느라 한 말이었지만, 정작 나는 가난의 꼬리표가 붙기라도 한 것마냥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쩌다 잘못 결합한 조어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그 선생님 입을 통해 생계형이라는 단어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생계형인데, 생계형이니까…. 먹고살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니, 그래 나는 생계형 강사다. 

  그런데 한국어 강사는 생계유지의 목적으로 가져서는 안 되는 직업인 건가? 다른 직업은 생계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돈 잘 번다는 의사나 변호사는 생계형인가 아닌가? 그들은 그 직업을 그만둬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직업이 있단 소린가?


  [문제 풀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생계’라는 말을 찾아본다. ‘살림을 살아 나갈 방도’라는 설명이 보인다. 다시 ‘살림’이라는 단어를 찾는다.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그러니까 생계형 강사라는 말은 가족을 건사하며 살 수 있는 수단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쯤 되겠다. 


  모든 직업은 생계형이다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에 도덕 교과서를 통해서인지 사회 교과서를 통해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직업을 갖는 이유를 배운 적이 있다. 그 이유에는 자아실현도 있었고 생계유지도 있었고, 사회 기여 같은 것도 있었다.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날 선생님은 단지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위해 직업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변호사나 교수, 그리고 한국어 강사도 생계유지를 위해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아도 실현하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도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직업마다 각각의 이유가 차지하는 퍼센티지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생계형이란 단어를 꺼낸 선생님이 그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특정 부류의 강사를 굳이 ‘생계형’으로 구분했던 것은, ‘한국어 강사는 부업으로 알맞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부업으로 해야 알맞은 직업에, 먹고살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괜히 딱하게 생각된 것은 아닐까.


  한국어 교사에게 희망을!

  하지만 나는 한국어 강사의 ‘생계화’를 꿈꾼다. ‘N잡러’가 되지 않고도 충분히 생계를 꾸릴 수 있는 한국어 강사 말이다. 조만간 그렇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가르치는 대학의 교수님들이, 생계형임에도 생계형이라고 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제자들의 현실을 마냥 방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국어 교육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인데 ‘한국어 교사 교육 시장’만 커지고 있다는 제자들의 원성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류의 성장과 함께 높아진 국격이 주는 실익을 외교 현장에서 누리고 있는 정부 당국자들이, 그 영광의 한 축을 뒷받침하는 한국어 교사들이 받고 있는 알량한 대우를 계속 모른 척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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