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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지 Sep 25. 2022

스타킹 공장과 한국어 강사 사이

오늘의 어휘: 전업

※다음 대화를 잘 읽고 여자가 이어서 할 행동으로 알맞은 것을 고르십시오.

   학생: 선생님, 월급이 얼마예요?

   여자: 글쎄…. 한 100만 원쯤?

   학생: 아이고, 저랑 같이 스타킹 공장에 다녀요 선생님!                    


  ① 학생과 함께 스타킹을 사러 간다.

  ② 학생이 다니는 공장에 일하러 간다.

  ③ 인생에서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④ 자신의 직장 상사에게 임금을 올려 달라고 말한다.



  대학원 시절, 동기들과 스터디 모임이 끝난 후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어쩌다 한국어 교사의 현실이 화제로 올랐다. 대부분 교육 경험들이 없어 그런 얘기를 그저 풍문으로만 접할 때였다. 나 또한 당시엔 ‘전업’ 한국어 교사가 아니어서 별반 아는 것이 없었다. 평일에는 회사를 다니고 일요일 하루만 수업을 하는, 이른바 ‘자아실현형’ 교사였다고나 할까.

  다행히 그날 그 자리에 경험 많은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다. 하루는 한 학생이 “선생님, 한 달 월급이 얼마예요?”라고 묻더란다. 평소에 학생들과 워낙 허물없이 지내기도 했던지라 딱히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더니 학생의 눈이 동그래지더란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덥석 잡더니 하는 말.


  ―저랑 같이 스타킹 공장에 다녀요, 선생님!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배꼽을 쥐었다. 왜 웃었냐고? 그때만 해도 딴 세상 얘기인 줄 알았으니까!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우스운 코미디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날 그 말을 웃어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하다못해 그 선생님에게 스타킹 공장의 전화번호라도 알아보라 하고, 한국어 교사로서의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돌이켜보니 그날의 이야기는 그 선생님만의 특수한 체험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어 교사들이 처한 보편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 풀이]


  폼 나니까 낮은 임금을 감수하라고?

  대학 부설기관 한국어 강사의 현실을 다룬 인터넷 기사나 카페 글에는 응원의 댓글도 있지만, 읽기조차 쓰라린 댓글도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그렇게 비판을 하면서 왜 여전히 한국어 강사를 하느냐, 다른 곳보다 ‘대학에서 일한다’고 할 때 좀 폼 나 보여서 그러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그런 열악한 처우쯤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냐는…. 

  대부분의 한국어 강사들은 한국어 교육에 대한 신념 하나로 학위를 따고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다. 특히 학위를 따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했을 때는, 한국어 교육을 일정 기간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일할 ‘업’으로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석사학위에 이어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사이 한국어 강사의 근로조건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못했을 것이다. 안다 해도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실감할 수 없었을 것이고….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목표로 했던 일인데, 처우가 안 좋다고 당장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야구만 하던 사람이 갑자가 축구를 할 수 있을까? 많은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한 카페를 장사가 안 된다고 하루아침에 접을 수 있을까? 

  전업은 못 해도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선배 중 한 명은 수업이 없는 방학 중에 목욕탕 세신사를 한다고 한 적도 있다. 그렇게 힘들게 한국어 강사를 해 오던 그 선배는 상처를 입을 대로 입고, 현재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해 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 하려 해도 전업은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피하기만 하라는 것인가.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내고 작은 날갯짓이라도 해야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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