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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지 Sep 27. 2022

한국어 강사, 무기라도 좋은?

오늘의 어휘: 무기계약

※다음 밑줄 친 부분과 의미가 비슷한 것을 고르십시오

   서울대에 이어 연세대, 경희대가 한국어 강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① 무기 휴강   ② 무기 대여법   ③ 무기명 투표   ④ 무기 화합물



  대학 1학년, 내겐 그야말로 푸릇푸릇한 날들이었으나 요즘 MZ 세대에겐 역사책에나 나오는 시절일 수 있겠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덜컥 문학 동아리에 가입했다. 하지만 낯가림으로 동아리 사람들과 말 트기가 쉽지 않았다. 공강 시간에 들른 동아리방, 하필 3년씩이나(!) 위인 선배가 앉아 있었다. 궁색한 공간에 어색함까지 감돌았다. 침묵을 나눌 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닐 때는 무조건 뭐라도 묻는 것이 좋다. 


  ―형!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땐 여학생도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부르던 시대였다. 그 형은 ‘무기재료공학과’에 다녔다. 뭘 배우는 학과일까. 호기롭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재료였다.


  ―형, 무슨 무기를 만드는 거예요?


  그때의 일을 다시 회상하는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정말 무식해서 용감했다. 선배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내 질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동아리방을 나온 후에도 오래도록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난다[사실 지금도 무기재료가 뭔지는 모른다. 다만 유기재료의 반대라는 것, 그리고 무기(weapon)는 절대 아니라는 것만 알 뿐].

  한국어 강사들의 용기 있는 투쟁에 힘입어 한국어 강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대학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3개월 계약직 신세를 여전히 못 벗어나고 있는 입장에선 그런 결정을 내린 대학, 그리고 그걸 얻기 위해 싸울 용기를 낸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기한 없이 계속 일하는 사람이면 직원인 거지 무기계약직은 또 뭐란 말인가. 신분제도가 철폐된 줄 알았는데 겹겹이 켜켜이 신분을 나누고 가르는 단어가 많기도 하다. 오래전 대학 신입생 때처럼 무기계약은 또 뭐냐고 물어야 할까. 한국어 강사는 무슨 무기를 준비하면 되느냐고 말이다.


  [문제 풀이]


  2020년, 서울대 언어교육원 한국어 강사 전원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는 뉴스를 보면서 내 마음속에도 폭죽이 터졌다. 역시 서울대! 잘했다 선생님들! 그렇게 마구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그 뒤로 경희대, 연세대 등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계약 기간이 3개월 또는 6개월이 아니라 그 끝이 없는 무기(無期)라니, 쾌거였다! 


  무기계약직겉만 번드르르한

  그렇게 무기계약직이면 다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여파가 다른 대학에도 퍼져 나갈 거라는 기대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런데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파업을 접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기계약은 고용을 보장해 주는 것일 뿐 임금까지 보장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것, 정규직처럼 매월 고정 임금을 주는 게 아니라 여전히 강의 시수만큼 임금을 준다는 것, 그러니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 시간 외 근로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도 여전히 끝없이 해야 한다는 것…. 무기계약직이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았는데 허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 부러운 건 있다! 3개월이나 6개월 후 다음 학기에 재계약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초조했던 방학과는 이젠 안녕이라는 것! 한국어 강사들은 다음 학기 수업을 받지 못해도 보통 학교로부터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한다. 자동으로 ‘계약 해지’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기계약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걸까.


  우리들의 무기를 찾아서

  무기계약이라…. 전국 대학의 한국어 강사들이 뭉쳐 ‘무기’를 준비하면 정녕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대학의 수입 손실을 감당하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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