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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지 Oct 05. 2022

한국어 강사는 깐부가 없다!

오늘의 어휘: 제로섬

다음 밑줄 친 부분과 의미가 비슷한 것을 고르십시오.

  한국어 강사가 네가 죽어야 내가 살고 내가 죽어야 네가 사는 직업일 줄 몰랐다.


  ① 직업인 것을 알고 있었다           ② 직업이라고 생각할 뻔했다

  ③ 직업인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④ 직업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다  



  <신 오징어 게임>

     

  #1. 탈락되는 한 명 한 명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몰려든다. 게임을 할수록 한 명씩 한 명씩 탈락된다. 추억의 게임이려니 하고 가볍게 임했던 참가자들은 총에 맞고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며 공포에 휩싸인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달려든다. 학기가 진행될수록 한 명씩 한 명씩 등을 돌린다. 멋진 일이려니 하고 신나게 뛰어들었던 선생님들은 쥐꼬리만 한 시급과 코끼리 다리만 한 시간 외 업무를 쳐내며 회의감에 빠진다.


  #2. 게임은 속개되고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참가자들의 투표가 시작되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마침내 게임은 중단되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 그러나 현실은 게임장보다 더 심한 지옥.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의 명함을 받고 다시 게임장으로 향한다.


  학생들의 인사와 동료 선생님들 간의 덕담이 오가는 가운데 마침내 3개월의 학기가 끝나고 짧은 휴지기에 들어간다. 한국어 강사를 계속할 것인가, 전업할 것인가.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은 전쟁터. 선생님들은 학교의 재계약 전화를 받고 다시 교실로 향한다.


  #3.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같은 팀이 되면 이겼을 때 같이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줄다리기가 끝나고 2명씩 팀을 만들라 했을 때 참가자들은 너도나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찾았다. 하지만 구슬치기는 그 짝과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죽지 않고 살려면 짝이 가진 20개의 구슬을 모두 따야만 했다.


  함께 일을 하면 마냥 좋은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했을 때 선생님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시간을 나누었다. 하지만 수업 시수는 서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많이 받으려면 다른 선생님이 적게 받아야만 했다.


  [문제 풀이]


  <오징어 게임>의 감독과 주연이 미국에서 에미상을 받았다. 모두가 좋아하고 박수 보내는 걸 보니 대단한 상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그 파급력을 생각하면 사실 상을 받을 만했다. 이 드라마가 한창 방영 중일 당시, 한국에서 공부하면서도 아르바이트에 치여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이 <오징어 게임>만은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의 수상이 참 기쁘다.


  <오징어 게임>이 펼쳐지는 한국어 교육

  그런데 그 드라마에 우리 한국어 강사들의 상황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드라마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준 공신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정작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 영광의 한 자락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서글펐다.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으로 살면서 가장 예민해질 때는 수업 시수를 배정받을 때이다. 수업 시간에 사용할 활동지를 만든다거나 시험 출제를 한다거나 학생들의 성적이며 출석 등을 정리해야 한다거나 하는 무수한 잡무로 늦도록 잠을 못 자고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터무니없는 고생은, 수업 시수가 주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보통의 직장은 내 월급이 오른다고 해서 동료의 월급이 내려가진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함께 월급이 올라 같이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그게 공정과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어 강사들은 그런 보통의 기쁨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 한 학기 수업 총량이 정해져 있는 상황인지라, 수업을 많이 받는 사람이 있으면 수업을 적게 받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데스 매치 혹은 제로섬 게임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수업을 배정하는 학교 측은 배정 결과를 항상 쉬쉬하고, 배정받는 강사들은 자신과 동료가 받는 시수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운다. 남보다 많이 받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이 학교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나 하는 자존심의 문제가 더 크다.


  한국어 강사도 깐부를 만나고 싶다 

  파이가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한국어 강사를 정규직 근로자로 채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어 강사들에게 재직 기간과 경력에 따라 알맞은 월급을 지급하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수업이 적어도 월급이 많을 수 있고, 수업이 많아도 월급이 적을 수 있다. 예컨대 보통의 회사에서 대리가 많은 일들을 하고, 부장은 조금 더 중요한 일들을 하지 않던가. 한국어 강사들에게도 ‘깐부’의 아름다운 가치를 체험할 기회를 주시라. 파이만 괜히 여러 개로 잘게 조각 내지 말고, 그렇게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되는 일이다. 

  <오징어 게임>,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풍자했다더니 혹시 한국어 강사들의 잔인한 세계를 패러디한 건가. 그래서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이 그리 좋았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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