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육 ‘체험 수기’ 공모전 유감
오늘의 어휘: 체험
※( )에 들어갈 가장 알맞은 것을 고르십시오.
많은 대학과 대학원에 한국어 교육 관련 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이곳을 통해 배출된 한국어 교원은
이미 하나의 ( ) 자리를 잡았다.
① 유행으로 ② 부업으로 ③ 전문직으로 ④ 체험 행사로
지하철 안에서 올려다본 광고, 10월에 열리는 지역 축제를 알리고 있다. 초대 가수보다 여러 부대 행사가 눈길을 끈다. 어선 승선 체험도 있고 새우젓 담그기 체험도 있다. 체험 행사라…. 그래, 저런 체험 한번 해 보면 재미있겠다 싶어 궁금해진다.
인터넷에서 마주친 기사, 국내외 한국어 교육자의 ‘체험 수기’를 공모한다고 한다. 응모 대상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지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단다. 지도해 본 경험이라…. 한국어 교육을 일회적 체험 영역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뜨악해진다.
맹렬한 호기심으로 검색하다 발견한 한국어 교원 ‘감동 수기’ 공모전 행사. ‘한국어·한국 문화 교육 경험’이 공모 주제란다. 감동 수기라…. 한국어 교원은 감동을 창출하는 직업인 건가 싶어 의아해진다.
한국어 교원이란 직업을 경험 삼아 한번 해 보는 일이라 생각했어야 하는 건가. 매일매일 가르치고 준비하는 일이 전쟁 같은 난릿속이어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성직자처럼 거룩한 마음을 가졌어야 하는 건가.
나는 매일매일 밥을 먹는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밥 먹어 봤어요?’라고 묻는다면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밥은 이미 일상이니까. 그런데 공모전은 묻는다. 한국어를 가르쳐 봤냐고, 그 경험이 어떠했냐고.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다. 한국어 교육은 관광지의 체험 코스가 아니니까, 이미 삶이니까.
[문제 풀이]
한국어 교원을 위한 행사인 건 알지만
예전보다 줄긴 했지만 올해도 한국어와 한국어 문화 교육 ‘체험 수기’를 공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작은 행사가 아니다. 대학 기관이 주최하는 것도 있고, 정부 기관이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것도 있다. 이런 공모전은 상금을 내걸고 국내외 한국어 교원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누군가로부터 잘한다 잘한다 칭찬받는 것처럼 힘이 나는 일은 또 없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건가 싶어 흔들릴 때, 가만가만 어깨를 도닥이는 손길 하나가 꺾였던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한국어 교육 체험 수기 공모전은, 국내외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일의 보람, 수고로움,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심리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사일 수 있다.
공모해야 할 것은 체험 수기가 아니라 처우 개선 방법
하지만 한국어 교육이 시작된 지가 언제인가.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이 설립된 1959년부터라고 하면 벌써 60년이 넘었고, 한국어 교원 제도가 법적으로 정비된 2005년부터라고 해도 어느새 20년 가까운 세월이다. 많은 대학과 대학원에 한국어 교육 관련 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그렇게 그곳에서 배출된 한국어 교원은 이미 하나의 전문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어 교원의 체험 수기를 공모한다는 것은 한국어 교원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그 생각 때문에 여전히 한국어 교원에 대한 처우가 제자리 걸음인 것이다. 국내외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체험 수기를 공모하는 행사가 있던가. 대학 교수 체험 수기, 프로게이머 체험 수기를 본 적이 있던가.
한국어 교원의 감동 수기로 한국어 교육의 저변이 확대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 교원이 되었다고 치자.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그 대책은 세워져 있는가. 그것이 없다면 한국어 교육 체험 수기 공모전 행사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한국어 교육 체험 수기를 공모할 때가 아니라 한국어 교원의 처우 개선에 대한 학회를 개최하고 공청회를 열어야 할 때다. 한국어 교원의 처진 어깨를 펴 주는 것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목소리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