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부로 살기로 했다.

집밥엔 기본양념 외에 엄마의 수고로움이 한 스푼 들어가서 맛있는 건지도

by 따오기

주말에 이틀이나 비가 내려 딱히 뭘 한 게 없다.

아니, 덕분에 오랜만에 주부로 지낸 이틀이다.


평소 주말도 빨래, 청소, 식사 준비를 하긴 하지만

이번 휴일엔 설거지를 참 많이 했다.

장마라 습기가 많아 여기저기 손이 갔다.

살림은 하려면 끝이 없고, 안 하려면 할 게 없다.

설거지를 했다는 건, 외식을 안 하고 냉파(냉장고 파먹기)를 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오래간만에 냉장고 정리도 하고

야채 칸에 있던 감자. 양파. 호박을 숭숭 썰어

두부와 고기를 넣은 집 된장찌개와 호박나물을 해 먹었다.


남이 보면 별 거 아닌 찬이 내게는 특별한 밥상이다.

말 그대로 집밥이라는 게 이런 걸지도.

딱히 차린 게 없어도 찌개 하나로 뿌듯해 할 수 있는 거.


사실 나는 요리를 그다지 즐기지도 잘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맘만 먹으면 초스피도로 해 낸다.

맘이 잘 안 먹어져서 그렇지. ㅎㅎㅎ

이상하게 살림도 주기가 있는 것 같다.

어느 때는 재밌어서 자주 하게 되고

감을 잃으면 손도 대기 싫은 노동이랄까?


나는 여러 가지 믹스한 음식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이 나는 심플한 요리를 좋아한다.

감자볶음이면 거의 감자만... 호박볶음이면 거의 호박만. ㅎㅎㅎ

그리고 금방 한 음식을 가장 좋아한다.


특히 시골태생인 내게 여름 반찬은

밭에서 금방 공수한 호박. 가지. 감자. 오이 등으로 즉석으로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태반이다.

늘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을 먹기만 했으니 음식이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다.

엄마의 수고로움이 반 이상 가미된 진수성찬인 줄 도 모르고~


그런 내가 언제부턴가 요리를 안 하고 살고 있다.

사실 거의 안 한다는 거고...

쪼오금 하기는 한다. ㅎㅎㅎ


돌이켜보니 이직을 하고 출퇴근에 거의 서너 시간을 투자하고

8시나 되어야 집엘 도착하는 라이프사이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주말이면 그이 일을 돕거나

강의까지 있었으니 안 봐도 비디오다.

그렇다고 남의 힘을 빌릴만한 대단한 벌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실속 없이 몸만 바쁘다.


근데 요즘 자꾸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뭘 위해 사는데?', '뭘 하려고?', '무엇을 위해서'

먹거리를 이렇게 대충 때우고 사는 가 싶다.

특히 몸이 여기저기 고장이 나니 다 먹거리 탓인 것 같은 불안감까지 엄습한다.


아침은 굶거나 빵이나 커피. 떡 등을 불규칙하게 먹는다.

점심은 동료들과 면. 탕. 한정식 등 매일매일 외식을 한다.

거기에 후식으로 커피. 케잌까지.

회사에 먹으러 다니는 것 같은 생각이 가끔 든다.

비록 매번 메뉴를 정하는 미묘한 신 노동을 수반하기도 한다.


저녁은 그이가 장 봐 온 반찬이나, 내가 급히 구입한 반 조리 식품이나 일품요리로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먹는 먹거리가 전부 외식이고 남의 손을 빌려 만든 음식들이다.

솔직히 웬만하면 믿고 먹는데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도 모를 집 밖의 음식들이다.


예전엔 엄마가 준 양념과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살았는데

이젠 고춧가루도 참깨도 들기름도 잘 떨어지질 않는다.

그리고 엄마나 시어머님이 준 양념도 매번 있는 게 아니었다.

이상하게 양념은 없으면 생각나고, 있으면 제대로 안 먹고 남기게 되는 묘한 속성이 있다.

엄마가 늘 그 자리에 있을 땐 고마운 줄 모르다가 안 계시니 간절한 것 같은 심리랄까?

그것마저도 이젠 거의 바닥이 났다.


막상 양념을 사려니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다행히 언제부턴가 지인들이 기름도 주고 고춧가루도 준다.

결국 그만큼 뭔가를 하고 있지만...


뭐든 다 사야 하는 구조.

결국 다 남의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산다.

그러니 음식에 개인의 취향도 영양도 선택 불가다.

심지어 간도 내 입맛에 맞지 않지만 그냥 먹는다.

이젠 피자도 스파게티도 맛집 요리도 그다지 맛있게 느껴지질 않는다.

그저 별 반찬 없어도 집에서 금방 한 집 밥을 먹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나도 이런데... 가족들은 오죽하겠냐 싶기도 하다.


이젠 어느 음식점 무슨 음식이 맛있다거나

어느 마트. 어디 플랫폼 밀키트가 맛있다거나로 이야기 소재가 바뀌고 있다.


그런데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먹으면서도 왠지 죄책감이 들고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고

뭔가 늘 해야 할걸 못하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끔 살림 잘하는 주부들을 보면 죄책감까지 들곤 한다.


아무래도 이제 다시 살림을 해야겠다.

재료는 내가 만들지 못한다 해도

마무리는 내 손은 거쳐 먹어야 할 것 같은 위기감 내지는 절박감이 든다.


어제 오래간만에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였더니

우리 집 큰 애가

"최근에 먹었던 찌개 중 가장 맛있는 찌개"라고 찬사를 한다.

별 거 아닌데 재료가 신선하고 나의 정성이 한 스푼 담겨 그런가 보다.

집밥엔 기본양념 외에 엄마의 수고로움이 한 스푼 들어가서 더 맛있는 건가 보다.


내가 예전에 울 엄마 음식을 그렇게 맛있다고 기억하는 것도

엄마의 정성이 듬뿍 배어 그랬을지도...


그동안 너무 피곤하다고 몸을 아꼈나 보다.

그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무늬만 주부로 살다니...

아무래도 이제 몸을 더 움직여야겠다.

바지런은 못 떨어도 기본은 해야겠다.


아무래도 다시 살림에 공을 들여 볼 생각이다.

다시 진짜 주부가 되어 봐야겠다.

먹거리에 진심을 담아 봐야겠다.


일단 건강하게 살아야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잊고 살아간다.

몇 살을 더 먹어야 철이 드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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