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는 치킨이 답이다.
” 지호야, 잠깐만 기다려. 이모가 바싹하게 튀겨 줄게~. “
아침부터 찾아와 치킨 먹다 싶다는 지호와, 오픈 준비로 정신없이 주방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데 홀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모~~~~~~ 삼촌~~~~~~. "
황소개구리보다 울림통이 좋은 서연이가 나타났다.
가게 앞 초등학교에 다니는 서연이는 5학년이다. 성장발육은 또래보다 월등히 앞섰지만 몸에 비해 말투와 행동은 느린 서연이는 온 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고 있는 사랑 듬뿍 받은 귀한 막내딸이다. 아빠가 사업 때문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는데도 혹시나 순수한 막내딸이 다른 학교에서 적응을 못할까 봐, 부모님은 서연이를 위해서 전학은 시키지 않았다고 서연이가 자랑했다.
" 저 자식은 토요일인데 왜 또 나타나서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우리 대답하지 말고 숨어보자. "
아무리 바빠도 서연이는 놀리고 봐야 한다. 주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숨어 서연이의 행동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녀석은 예상대로 주방까지 쳐들어와서는
" 이모~~~~, 사암~~~초온~~~~ 어딨어요? 서연이 왔어요. 이쁜이 왔다고요. 대답해요~~. "
"... "
" 어? 어디 갔지? 이모~~~~ 서연이 왔어요. 사암~~촌~~~. 무섭다고요. 대답해요~. “
누가 봐도 금방 찾을 수 있는 주방 한쪽에 쪼그리고 있는 세 명을 못 보고는 왕눈이 서연이가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것을 몰래 보고 있자니 역시 서연이 다웠다.
" 야! 이 자식아, 여기 있는데도 안 보여서 그케 소리를 질러대냐? 으이그~ 눈은 장식이야! 너를 우짜면 좋냐? "
" 삼촌, 놀랐잖아요. 거기 있으면서 왜 대답 안 해요? 아유 깜짝이야! "
놀랐다며 느리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게, 영락없이 모자란 서연이가 며칠전에는 미래의 남친을 위해, 전교 부회장에 도전을 하겠다며 선포를 했다. 그 말에 지콩은 지가 법대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놀려댔지만, 서연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회장 선거공략 내용을 읊어대며 지콩에게 멋있지 않냐며 우쭐댔었다.
" 그나저나 너, 토요일 아침에 왜 여기까지 온 거야? "
" 오늘 영어학원 가야 해요. 가기 전에 이모, 삼촌이랑 놀라고 왔죠~."
" 집에서 그냥 뒹굴거리지. 누가 반긴다고 아침부터 온 거야. 다시 가버려. "
" 힝~ 삼촌, 나 치킨 먹고 싶다고요. 손님한테 이러면 안 되죠. 이거 봐요. 오빠가 만원 줬다고요."
" 지도 용돈 받고 사는 놈이 무슨 돈의 여유가 있다고 동생에게 삥을 뜯겨 주냐? 니가 뭐 이쁘다고. “
“ 서연이 완전 이쁘잖아요. “
서연이는 집에서 진짜 사랑을 듬뿍 받은 티가 나는 녀석이다. 놀림도 지맘대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 해석해 버리고, 매번 지콩이 '가버려' 하고 놀려도 듣고 싫은 말 따위는 가볍게 걸러 내버린다.
" 히힛! 삼촌이 나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 아~ 배고파. 빨리 치킨 줘요~. "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음료 냉장고에서 음료 한 캔을 꺼내 마시고는 금고로 활용하는 서랍을 열어 만원을 넣고 알아서 컵치킨까지 계산을 하고 거스름 돈을 꺼냈다. 가끔 돈통 아니 돈 서랍 앞에 앉아 지가 주인인 양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한다. 그러면 지콩은 구구단도 못 외우는 놈이 감히 돈 계산을 한다고 구박을 하며 비키라고 해도, 황소처럼 버티고 앉아 입을 오물거리며 계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확실히 어설프고 모자란 게 맞긴하다.
서연이와 지호가 나란히 앉아 모닝식사로 치킨과 음료를 맛있게 먹고 있는 사이, 폐지 할머니가 조용히 가게 앞으로 오셨다. 분식집으로 바뀌고 난 후로 재활용 음료 캔을 모아두면 아침마다 가져가시고 계셨다. 봄이 왔는데도 겨울 내내 입고 계셨던 때 묻은 꼬질한 경량 잠바 그대로 입고 계셨고, 안색도 이제는 봄이 오지 않을 것처럼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 할머니 아침 먹었어요? 이 치킨 진짜 맛있어요. 먹어볼래요? 아~ 해봐요."
배고프다고 독촉을 해 놓고는 고작 몇 조각되지 않는 치킨을 아깝지도 않은지, 서연이가 구십 넘은 왕할머니와 나눠 먹으려고 한다. 해맑은 열두 살 서연이가 버릇없이 훅 다가가 입을 벌리라고 하니, 할머니는 살짝 당황하셨다. 행여 아이에게 당신의 냄새가 전달될까, 다가오는 서연이에게서 슬그머니 거리를 두시며 젊잖게 사양을 하셨다.
" 할머니는 아침 먹었어요. 공주님 많이 드세요. "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서연이는 요지에 꽂은 치킨 한 조각을 포기하지 않고 할머니께 또 들이대며 신이 나서 대꾸했다.
" 할머니, 이거 방금 튀겨서 진짜 맛있어요. 한 번만 먹어봐요. 근데 내가 공주처럼 이뻐요? 진짜요? 삼촌~~ 할머니가 나 이쁘대요. "
저 머리에는 무슨 필터가 있길래 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걸러 내는지 웅진코웨이에 보내자며, 지콩이 할머니께 의자와 푹 익힌 어묵을 건네며 서연이를 구박했다.
할머니는 손님이 있으면 가게에 폐가 될까, 아무리 권해도 들어오지 않으시는 걸 지콩은 알고 있다. 가게 문 앞에 앉으셔서 뜨끈한 어묵과 서연이가 강제로 건넨 치킨 한 조각으로 늦은 아침을 드셨다.
영숙은 가만히 그녀들이 브런치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80년이라는 인생의 어마한 갭이 주말 오전에 스며드는 햇살과 더블어 나름 어울리는게 떡볶이 가게에서는 보기 귀한 풍경이었다.
그 풍경도 잠시, 서연이가 벌떡 일어나서 지나가는 남학생을 보고는 오빠~오빠~ 불러대며 신이 나서 뒤쫓아 가버렸다.
녀석은 항상 저런 식이다. 지 마음이 원하면 필터 없이 바로 행동하는.
슬슬 가게를 마감하려는 시간에 단골 똥꼬치마 여중생이, 딱 봐도 날라리 티가 팍팍 나는 남학생과 단둘이 들어왔다.
" 오빠, 우리 컵치킨이랑 떡볶이 먹고 가자. 내가 살게. 이모~ 컵치킨 두 개랑 컵볶이 두 개, 그리고 뚱캔도 두 개 주세요. "
마감시간에 들어온 것도 짜증 나는데, 저 치마 길이로 도대체 어디에 앉겠다는 건지 불안하게 영숙이 지켜보고 있는데, 영숙보다 더 못마땅했던 지콩이 같이 온 남학생에게 대뜸 시비를 걸었다.
" 야! 너 몇 학년이야?"
" 고2요. "
" 너희 둘이 사귀냐?"
" 아니요, 애가 저 좋다고 해서 그냥 만나주는 건대요. "
지콩의 눈에서 순간 레이저가 발사되었다. 뭐가 아쉬워서 저런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에게 매달리냐는 눈빛으로 똥꼬 치마를 확 째려본 후, 마치 지가 진짜 삼촌인양 협박을 시작했다.
" 야! 너 삼촌이 치마 짧게 입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중3이 공부는 안 하고 이 밤에 뭔 데이트야? 그리고 너 인마! 좋아하지도 않는 애를 왜 그냥 만나? 니가 뭐라고 애를 그냥 만나? 너 이 새끼 애 함부로 데리고 놀다가 버리면 우리 애들 풀어 버릴텡께 알아서 해라. “
그러면서 그동안 일부러 가렸던 토시를 확 벗겨 버리고는 깜찍한 용 문신을 내놓았다.
" 아~ 진짜, 삼촌이 뭔데 상관이에요? 이모~~ 삼촌 좀 말려봐요. “
" 넌 왜 애들 데이트에 껴 들어서 난리야. 이모가 대신 사과할게. 삼촌이 어릴 때 여자 친구와 불장난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그래. 누구보다 놀아 본 삼촌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너희가 이해해 주라. 그리고 지금 가게 마감시간이라 내일 삼촌 친구 올 거니까 그때 같이 떡볶이랑 치킨 먹자. 그 친구 별명이 놀부인데 왜 주안역 근처에 있는 한국관 알지? 거기 떡대 좋은 문지기 웨이터 흥부랑 맞짱 떠서 놀부라는 별명 얻었잖아. 살짝 험하게 생겼지만 이유 없이 때리지는 않으니까 걱정말고 내일 와. 이제 가게 마감시간이라 진짜 나가줘야겠다. 잘 가, 내일 봐 ~. “
남학생은 두 번 다시 똥꼬치마도 우리도 안 볼 기세로 허옇게 질려서 튀어 버렸고, 똥꼬치마는 두 사장을 흘겨보고는 오빠~ 하면서 따라 뛰쳐나갔다. 잠시 후 똥꼬치마가 한껏 올린 마스카라가 너구리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 삼촌! 아니 아저씨가 뭔데 남의 데이트를 방해해요? 이모! 아니 아줌마도 미워요. 둘 다 진짜 왜 그래요? ”
“ 으이그~ 이 바보야, 딱 보면 모르냐? 저 자식은 가만 냅두면 너 갖고 놀다가 뻥 찰거야. 으이그~ 바보야, 얼굴만 너무 보지 마라~ 그러다가 누구 꼴 난다. 그리고 언니 옷 훔쳐 입지말고 니 옷 입고 다녀. “
“ 응, 삼촌 말이 맞아. 그러다가 누구 꼴 난다. 자~ 여기 컵치킨이나 먹으면서 집에 가. 그리고 그 너구리 화장 좀 지워.“
" 어쭈~ 누나, 이제 나를 능가하는데? 대단해! "
" 저 남자애는 누가 봐도 너무 날라리 같잖아.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어 “
“ 크크, 이제야 구분을 합니까? “
드디어 마감이다. 하루종일 고생한 떡볶이 판과 어묵 통을 씻어 엎어놓고,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시커먼 세단이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아저씨와 고등학생쯤 보이는 훈남이 내렸다.
" 실례합니다. 서연이 아빠입니다. 서연이가 아직까지 집에도 안 들어오고 , 전화도 안 받아서 걱정돼서 찾으러 나왔습니다. 아침에 참새방앗간 간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와 봤습니다. “
말하지 않아도 아빠의 얼굴에서 서연이가 겹쳐지는 게 붕어빵 부녀였다. 옆에 있는 서연이 오빠는 완전 꽃미남에 명문고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천방지축 서연이의 패밀리는 뭔가 모르게 귀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 서연이 오전에 가게에 잠깐 오고는 그 후로는 안 왔는데... 아 참! 친구들이 지나가니까 따라서 갔어요. 같은 영어학원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
“ 아, 네 감사합니다. 학원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
영숙과 지콩도 왕눈이 겁쟁이 서연이가 어두운 밤에 집에도 안 들어가고 어디에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급히 공터로 가 보았다. 역시나 담배 피는 고딩들뿐이었다. 기분 나쁜 불안감이 몰려왔다. 지콩은 생각이 너무 앞서 이미 어느 나쁜 놈이 서연이에게 못된 짓을 한 것처럼, 개새끼 잡으면 죽여버린다고 씩씩대며 어두운 골목길을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녔다. 골목골목을 돌다 결국 가게 근처 불이 훤하게 켜진 교회까지 왔지만 서연이는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교회 담벼락에서 지콩은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가 주변을 환하게 비칠 정도로 어둠이 몰려왔는데 서연이는 어디에 있는 건지, 온통 서연이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데 담장 너머 교회에서 여자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 들어 들여다보니 교회 구석에서 서연이가 울고 있었다.
“ 서연이? 김서연 맞아? 야! 너, 왜 거기서 울고 있어? 가만있어. 삼촌이 갈게. ”
지콩이 부르는 소리에 서연이는 단숨에 달려 나와 지콩에게 안겼다. 뭐라 물어보지도 못하고 잠시 안아주며 달랬다. 경찰서에 있는 서연이 아빠에게 아이의 무사함을 전하고, 양쪽에서 손 꼭 잡고 가게로 데려가는 길에 서연이는 어느새 기분이 풀려 가게에서 나간 이후의 행적을 알려 주었다.
가게에서 좋아하는 오빠를 보고 따라갔는데, 그 오빠는 작년에 전교 부회장을 했고, 지금은 같은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오빠가 학원 끝나고 교회에 따라가도 된다고 해서 같이 가서 예배도 보고, 교회 주말 행사에 참석하며 재밌게 놀았다. 같이 있다보니 오빠가 더 좋아져서 고백을 했는데, 오빠가 싫다고 했다. 교회에는 학교 친구들도 많았는데 거절을 했다며 살짝 울먹였다. 지콩은 큰 덩치의 서연이 등을 토닥여주며 누르고 있었던 잔소리를 쏟아냈다.
“ 야! 니가 뭐가 부족해서 그 딴 놈한테 까이고 다녀! 제2의 김영숙이야? 으이그~ 멍청아. “
“ 힝~ 근데 배 고파요. 치킨 먹고 싶다. 삼촌. “
“ 뭐? 지금 치킨이 생각나냐? 너를 진짜 어쩌면 좋냐. 짝사랑은 몰래 혼자 해야지. 누가 사람들 많은데서 고백하고 공개적으로 까이고 다니냐? 그케 창피를 당했는데 배가 고파? 치킨이 먹고 싶어? 참 맑다 맑아.”
오빠도 좋고, 치킨도 좋아.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