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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Jul 06. 2024

폐업


억수 같은 봄비가 내린다. 80년 만의 봄의 이변이라며 라디오에서 외출 삼가 당부 방송을 반복적으로 해댄다. 차창 밖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부어대고, 와이퍼는 삐이익 소리를 내며 간신히 움직이고 있었다.

퇴근길 꽉 막힌 영동고속도로에 멈춰 선 차 안에서 우리 셋은 갑작스러운 놀부의 부고에 말을 잃어버린 채 갇혀 버렸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지도 않는 우리를 대신해서 하늘이 슬퍼해 주었다. 요란스럽게 천둥까지 치면서 눈물을 퍼부어 주고 있었다.

목적지인 사천까지 내비게이션은 6시간을 소요된다고 가리키고 있었고, 그나마 상태가 나은 빙구가 운전대를 잡았다. 조수석에 앉은 지콩은 얼이 빠져 있었고, 뒷좌석 영숙은 잠겨버릴 것 같은 차창밖 세상을 멍하니 쳐다보며 마지막으로 모였던 술자리에서 놀부가 울먹대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누나, 처음에 봤을 때, 눈동자가 비어 있는 게 우리보다 심각해 보였는데, 이제는 괜찮아 보여 다행이야. “


“ 뭐냐? 새꺄, 술만 마시면 질질 짜면서 무슨 남 걱정이야. 너나 챙겨. 그나저나 넌 이제 뭐 하고 살 건데? ”


“ 나? 나야 뭐… 음… 알아서 되겠지 뭐. 언제는 생각하고 살았나 뭐. 설마... 뒤지기야 하겠어. 하하. “


지콩의 면박에 술잔을 비우며 울다가 웃다가 하는 놀부의 행동은 흔한 우리들의 공허한 그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술에 취하면 감정까지 취해버려 나오는 술주정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놀부는 그때 이미 어둠에 갇혀 있었다. 모든 게 끝나버린 이제서야 알아차리다니, 우린 넷다 마음 병을 앓고 있었으면서 놀부가 모든 걸 끝내버린 후에야 알아차리다니, 왜 그때는 내 술잔에만 내 눈물에만 집중을 했을까. 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둡고 깊은 블랙홀에 빠져 혼자 얼마나 허우적댔을까.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깊은 상실에 빠져 있었을 너를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힘들었구나. 그래 실컷 울어. 옆에 우리가 있잖아.

그 몇 마디의 위로만 던졌더라면 너를 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에 영숙은 미칠 것 같았다. 힘들었지... 그 말이라도 했더라면.


놀부는 야식 가게를 할 때 수시로 가게 밖에서 먼 곳을 보며 멍 때리는 영숙을 위해 중고 캠핑의자를 구해 주었다. 편하게 앉아 실컷 멍 때리라며, 그래야 정신 차리고 일할 수 있다고. 그 캠핑의자는 지금 영숙뿐만 아니라 가게 앞을 지나가는 많은 이들에게 쉼의 위로를 주고 있는데, 놀부는 쉼의 위로를 받지 못하고 떠났다.


“ 병신 같은 새끼, 헬멧은 왜 안 쓴 거야. 나쁜 새끼! 배신자 새끼… 흑흑… ”


갑자기 지콩이 울기 시작했다. 한때 놀부와 지콩은 심한 우울증 약을 복용했었다. 군복무 불가 판정을 받고 공익으로 배치되었으나, 그것조차 못 받고 면제가 될 정도로 심각했다.

그 후 영숙이 만났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 군대를 가기 싫어서 수를 쓴 거라고 놀리고 했었는데, 진짜였나 보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잡아주지 못한 죄책감에 결국 영숙도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 얼마나 많이 지쳤을까, 여기 바다도 있는데 왜 그 먼 곳까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헬멧도 안 쓰고… 흑흑흑. ”


배달하다가 죽기 싫다며 부적처럼 빨강헬멧을 쓰고 다녔던 놀부가 부적도 없이 마지막 스피드를 즐긴 것에 대한 의문에는 너무 늦었다고 놀부는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짠내 물씬 풍기는 남해바다 앞 작은 병원에 우리는 자정이 넘긴 시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이미 늦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떠나는 식을 치루었다.

한 겨울에도 반바지만 입던 놀부에게 훨훨 날아가려고 학이 수 놓인 수의로 입혀 주었다. 연노랑색의 수의를 입은 입관식 때의 놀부 모습은 그 많던 잡티는 말끔히 사라지고 마치 평온하게 잠자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 이게 마지막 모습이냐? 다 내려놓고 떠나니까 좋아? 편해? 왜 이렇게 평온해 보이는 건데, 흑흑흑. “


지콩이 목 놓아 소리 질렀다. 영숙은 놀부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자는 것 같아 놀부를 깨울 뻔했다. 그 모습이 너무 신비로워 만져서 느껴보고 싶었다. 빙구는 조용히 오만 원 한 장을 꺼냈다.


“ 먼 길 가는데, 차비로 써. “


그러고는 놀부의 손 위에 올렸다.

그렇게 우리는 이틀 동안 가족조차 오지 않는 놀부의 마지막 길이 너무 허무하고 불쌍해서 꺼이꺼이 울다가, 남은 우리 삶이 너무 공허해져 독주를 들이켰더니 온몸에서 눈물이, 기운이 다 빠져 나가버린것 같았다.

우리의 마음은 지뢰밭이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지뢰가 까딱하면 펑 터질 수 있어 서로가 눈을 모아 감시를 했어야 했다.  놀부는 건장하니까, 무섭게 생겼으니까, 알아서 잘 견딜 줄 알고 내버려 뒀는데 결국 폐지할머니보다 먼저 먼 길을 가고 말았다. 그때 어깨에 기대어 울 때 제대로 어깨를 내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 미칠 것 같아 영숙은 목놓아 울며 사과를 했다 . 하지만.이곳과 그곳의 경계가 분명하니 더는 놀부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엉망진창이 된 마음으로 놀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영숙은 또다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 넌 크루백 끌고 다니라니까, 여기까지 와서 고작 김밥 마니까 좋아? 치킨 튀기니까 좋아? "


"응 좋아. 선배, 우리 빅토리아 시내에 언제가? 이번에 차이나타운 가면 떡볶이 재료 두배로 사 오자. 이게 은근 인기 짱이네. “


꿈만 같았던 지난 일 년이었다. 너무 좋아서 꿈 꾼것 같고, 너무 끔찍해서 꿈이였으면 했던 지난 일년이었다. 얼떨결에 인수한 야식배달 가게에서 난생 처음 음식 장사를 하면서 만났던 동생들과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 본 사랑 정우가 그립다.

참새들은 뭐 하고 지낼까? 참새방앗간은 직업소개소로 바뀌어 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컵치킨을 못 사 먹어서 애들이 많이 섭섭하겠다는 생각에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폐업을 한 것이 미안해졌다.

놀부의 죽음은 영숙을 가게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니 그 동네를 다시는 못 가게 만들어 버렸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다시 마음의 병이 도지고 말았다. 다행히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망각과, 약에 의존하며 영숙은 버티고 있다. 하지만 깊게 박혀버린 놀부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어릴 적 엄마의 습관적인 언어폭력과 함께 즐겨했던 말 ' 같이 죽자. 살면 뭐 하노‘ 은 트라우마가 되어 문득문득 영숙을 괴롭히고 있다. 독이 든 캡슐을 아직 내 안에 있어 언제 열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아직은 돌아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숙은 그립고 모두가 보고 싶다.


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 미안해. 부디 모두 잘 지내길.

내 사랑하는 동생들, 귀여운 참새들, 그리고 정우씨.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나 아닌 누군가에게 어깨를 빌려줄 만큼의 힘이 생기면,

참새방앗간에서 매콤한 떡볶이와 바삭한 치킨을 튀기면서 너희를 기다릴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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