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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비 Aug 12. 2023

수술하는 날

2022년 11월 30일 드디어 유방암 수술이 있던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수술이 암수술이라니

내가 다니는 병원은 간호간병통합병동이라

보호자 없이 입원하고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더 많이 긴장되었던 것 같다.​


11월 29일에 입원하고

의사 선생님들이 와서 마취동의 수술동의를 받았다.

수술동의를 위해 보여준 나의 mri 사진을 보면서

너무 놀랐던 건. 항암 전 항암 후에 암사이즈가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큰 동그라미에서 작은 동그라미가 된 나의 암

덕분에 나는 전절제에서 부분절제로 수술부위가 줄어들게 되었다. 진짜 은혜였다.

그리고 수술 당일!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벌벌 떨던 나! 휠체어에 타서 맥박을 재던 간호사는 긴장한 나를 토닥여주면서 잘될 거라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수술실에 도착했다.


의사들은 무슨 수술하러 왔는지 어느 쪽 수술하러 왔는지 질문을 했고 휠체어에 태워 수술대로 데려갔다 수술대에 올라선 후 내 다리를 묶고 얼굴에 내 몸에 선을 연결하고 추운 곳은 없는지 물어보는 간호사! 그리고 나타나신 담당교수님은 따뜻하게 푹 잘 자라고 토닥여주셨고 마취주사가 들어갈 거고 좀 아플 거라는 말을 끝으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깨어난 나는! 회복실에 누워서

“너무 아파요 ”라고 연신 얘기하자 간호사가

지금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고 병실로 올라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마취가 덜 깬 채 병실 침대로 옮겨졌다

내 가슴은 붕대로 돌돌 말려 있었고

6시간 동안 자지 말고 호흡을 해야 마취 때문에 쪼그라든 폐가 펴질 거라고 했고


혹시나 잠이 들까 봐 허리를 세우고 침대에 계속 앉아 있었다. 진통제 때문에 몸은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다. 대신 밤새 금식으로 인해 굶은 난 몹시 배고팠다. (이 와중에도 나는 배가 고프다-_-) 이후 병원에서 준 첫 식사인 죽을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외과교수님이 오셔서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오늘은 꼭 침상 안정을 해야 한다며 눕혀주셨고 림프제거한 팔도 심장 위에 올려야 한다며 가슴 위에 올려주셨다. 참 따뜻한 의사 선생님이다


지금까지 본 의사들 중 단연 성품이 너무 좋은 사람이자 엄청난 실력 자란걸 나의 수술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진짜 강추!!!!)


다음날 붕대를 풀어주시고 상처를 보라고 얘기해 주셨는데, 뭔가 자신감의 찬 의사 선생님 말투! 용기를 내서 바라본 내 가슴!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의 가슴 유두 모두 붙어 있었다.

사실 나는 암시키를 떼어내는 수술이 너무나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무서웠다. 항암 후 내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질 때 느꼈던 서러움과 상실감처럼 수술 후 잘려나간 나의 가슴을 보면 과연 나는 이 상황들을 감당할 수 있을는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항암으로 줄어든 암사이즈 덕분에 전절제 대신 부분절제를 해주셨고 사라질뻔했던 유두도 살려주셨다. 항암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6개월의 시간들이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주님은 나의 걱정과 고민을 알고 계셨을 텐데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일주일간 슬기로운 병원생활을 이어갔다​


먼저 수술 후 입원기간 동안의 가장 큰 소득은 친구들이 생겼다는 거였다.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선항암을 했다는 공통점과 수술 전 검사하러 가면서 같이 이동을 하게 된 인연으로 수술 순서 2번 3번 4번은 입원기간 동안 엄청난 절친이 되었고


같이 만나 복도를 돌며 운동도 하고 병원 안 카페와 매점을 돌아다니며 티타임을 가지며 그동안 겪었던 항암후유증과 마음을 나누었다. 내가 겪는 고통을 누군가도 경험하고 있었던 사실이 알 수 없는 친밀감과 큰 위로를 주었다. 언니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하하 호호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몰래 병실에서 나와 온 병원을 산책하며

“땡땡이씨 어디세요? 혹시 땡땡땡이씨도 옆에 계세요?” 간호사님의 호출에 티타임을 정리하고 후다닥 병실로 올라가기도 했다. ”보통은 한 병실에서 사라지시는 경운 많은데, 각병실에서 한분씩 사라지는 건 처음이에요. “ 그렇다 수술순서 2번 3번 4번은 가끔 입원 중 농땡이를 피며 우리가 암환자란 사실을

잊어갖고 심지어 퇴원하기 싫다며 우리만의 공감대를 키워갔다.

두 번째로는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기도를 부탁한 친구들과 가족 남자친구 심지어 병실 안에서 만난 많은 환우들에 많은 사랑을 받는 시간이었다.

수술하러 가는 시간 그리고 수술 중에 무수히 많은 카톡과 전화..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를 알게 되었고 친구들과 가족들의 기도와 격려덕분에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8번의 항암동안 내곁을 지켜주셨던 아빠같은 나의 삼촌, 입퇴원 하는 동안 늘 함께 외롭지 않게 해주셨다. 면회가 안되긴 했지만 엄마랑 언니도 나를 살짝 보러 와줬고, 남자친구랑 신관의 아지트에 만나 빵과 커피도 몰래 마셨다. 병실에 계신 많은 분 중에 내가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막내라 불리며 아껴주셨다. 장기 입원하셨던 환우 할머니께서 쌓이신 반찬으로 병원 밥을 더욱 맛있게 먹기도 했다.

이렇게 나름의 추억을 얻고 일주일간의 병원생활은 마무리되었다.


배액관을 떼고 집으로 간 후 몸이 더 아프고 손가락 뻗뻗해짐이 심해져 새벽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병원에서는 많이 아프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진통제 때문이었는지... 언니들이랑 수다 떠느라 아픈걸 잠시 잊었던 건지...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잘 이겨냈고 잘 버텼다! 감사했다


유아카페사람들 말처럼

“수술이 가장 쉬웠어요”

뒤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모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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