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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드러움주의

by 이씨

~~~ 파도치는 덩물을 본 적이 있는가.~~~


이십 대 중반, 임용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모 대학 도서관에서 열공하다, 때려 부은 커피의 열일 덕분에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때마침 이 대학교 운동장에서는 유치원생들의 운동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도서관과 운동장이 가까워

운동회 소음에 시달리던 터라 잔뜩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똑똑'

다행이다. 한 칸 남아있다.

운동장과 가까웠던 도서관 화장실은 이미 유치원생들과 그들의 어머니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바지를 다리까지 내리고 변기에 앉았서(왜 디테일하지?)

볼일을 보고 있는데,

옆 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 왜 안 내려가는 거야..?"


'어? 옆칸에 무슨 일이 있나?'


"엄마, 왜 그래?"


'딸깍 딸깍..'


위험하다.

옆 칸에서 불길한 비상깜빡이가 켜지는 게 느껴진다.

다년간 구축된 찌질함의 데이터가 지금 이 상황이 비상사태임을 알려온다.


"어.. 어.. 이거 왜 이래?"


"엇!!!"


...


'쾅!!... 후다닥'


그때였다.

옆칸에서 믿고 싶지 않은 뭔가가 파도를 이루며 이 쪽칸으로 침범해 오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어도 못 피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지만,

나는 옆칸에서 밀려오는 X물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바지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밀대 빠는 수도꼭지에 한쪽씩 번갈아 신발을 씻으며

나는 인생에 대해 고찰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일단, 집으로 가긴 가야 할 것 같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운동화 밑창이 닳아빠지도록

비벼대는 여자는,

집으로 가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그렇게 생각했다.


'애기 덩 이었겠지? 엄마 덩은 아니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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