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 면접

by 이씨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서른 곳 넘게 서류를 넣어 얻게 된 귀한 면접 일정이 두 개나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훗. 이번에야말로 오랜 백수 생활을 청산할 수 있겠군.'

몸 구석구석을 씻으며 번다한 마음 까지도 빡빡 씻겨 내려가길 바랐다.


오전 면접이 끝났다.

너무나 하고 싶은 사서직에 경력이 전무한 나는,

서류 통과하기도 몹시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면접이었다.


나는,

요건은 갖춰서 통과는 시켰지만,

누가 봐도 구색 맞추기용이다.

일명 '들러리'


열정과 패기를 내비치면 비칠수록 그들의 동공은 위아래로 크게 요동친다.

패색이 짙어지는 현장분위기를 느끼지만,

칼을 빼들었으면 그들 마음속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콩알만 한 동정심과 죄책감(?)에 흠집이라도 내보자는 심정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굽실대다 나온다.


무릎만 안 꿇었다 뿐이지

빌었다 빌었어.


하지만 가차 없다.

오늘도 오지 않을 전화를 바라보며 손톱을 물어뜯는다.


자, 오전 면접은 깔끔하게 잊자!

내겐 한번 더 꿇어야 하는 무릎이 남아있지.. 아니,

한번 더 봐야 하는 귀한 면접자리가 한 자리 있지 않은가?


오후 면접은 두 시까지니까 밥 먹고 심기일전해서 도전해야지!

밥 먹으면서 혹시 놓쳤을지 모를 면접일정을 살펴보는데,

아뿔싸! 자격증 사본을 안 가져왔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먹는 속도를 빨리하고 일찍 알아차려서 다행과 약간 뿌듯함을 느끼며 집에 들렀다.


챙길 서류 챙기고 1시간 거리의 면접장소로 출발했다.

차에서 염불 외듯 마지막 면접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가슴을 두 번 팡팡 친 다음 차문을 호기롭게 닫고

면접 대기실로 향했다.


한 층, 한 층 걸어 올라가며 미래의 내가 근무하게 될 곳이라고, 한 계단 한 계단에 꿈을 새겨 넣었다.


드디어 4층, 면접 대기실로 올라가는데,


공기의 흐름이 이상하다.

고여있다.

흐르지 않는다.


'어? 내가 너무 빨리 왔나?

왜 아무도 없지?'

그런데, 빨리 온 것치곤 대기실과 면접실에 불이 다 꺼져있다.

어떤 안내문도 붙어있질 않다.


'싸늘하다.

모종의 숫자가

가슴에 와 박힌다.'


'22'

Screenshot%EF%BC%BF20240315%EF%BC%8D163313%EF%BC%BFSamsung_Notes.jpg?type=w773



'아'


'아아아아아'


오늘은 3월 16일(금)

면접일정은 3월 22일(금)

이었던 것이다.


이놈의 모자람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피우라는 벚꽃은 안 피고

모자람만 꽃피우고 앉았다.


위로가 필요했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학습하고 성장한다는데,

나는 학습이 안 되는 동물인 걸까.

어떤 식의 위로든 상관없었다.

사람 목소리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욕이라도 듣고 싶었다.

욕에 일가견이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안 받는다.


'어림도 없지. 고통은 나누는 게 아니라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걸 아직도 모르니. 낮에 앓는 배앓이보다 밤에 앓는 치통이 열 배는 더 고통스럽다는 거 까먹었니. 실재하는 아픔을 정서적인 고독감이 배가시킨다는 걸...'


안다! 알아!


흐느끼며

운전하는 여자를 아는가?


그 여자는,

앞산 터널을 타고 수목원 도로를 타고,

굽이굽이 도로에 눈물을 흩뿌리며

한 몸 뉘일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집에 자알 도착해서

아이스크림 한통에 숟가락 하나 꽂아,

눈물 묻은 손

씻지도 않고

퍼먹고 있다고 한다.

끝.


이렇게 나는 모자람과 찌질한 일상을 계속 살아가고 있다.

갑자기 똑똑해지거나 지혜로워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나와 잘 타협해서 살아갈 것이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가끔은 내가 세상을 속일지라도,

모두 꿋꿋하게 잘 살아내었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1화11. 드러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