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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호 Apr 11. 2024

영국은 PUB의 나라이다

2024년 4월 11일 목요일

영국 주재원 시절 PUB(PUBLIC HOUSE)을 수도 없이 많이 다녔다. 업계의 지인들을 만나면 주로 PUB을 찾게 된다. 금요일이 되면 낮부터 PUB에 모여 저녁까지 술을 마시는 경우도 많다.


한 번은 네 명이 PUB에 모여 술을 마시게 되었다. 하나 둘 업계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몇 시간이 흐르자 30명이 넘는 인원이 PUB 앞마당에 모이게 되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어디에도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실내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지만 선채로 대화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이렇게 선채로 맥주를 먹는 것이 영국의 PUB 문화이기에 자리에 앉아서 주문할 수가 없다. 맥주도 엄청나게 많이 마시는 관계로 매번 주문하고 계산하는 것이 매우 번거롭다. 그래서 여러 명이 함께 술을 마시는 경우, 카드를 바에 맡기고 나갈 때 계산을 한다. 신용카드를 주면서 TAB을 OPEN 하겠다고 하면 알아서 처리해 준다.


한 번은 6시간을 넘게 선채로 맥주를 마신 경험이 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쉬지 않고 말을 한다. 처음에는 비즈니스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진행된다. 그러다 보면 하지 말아야 되는 말들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영국에는 PUB RULE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PUB RULE이란 그 자리에서 나온 모든 이야기에 대해 서로가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다.


런던뿐만 아니라 주거지역에도 PUB이 있다. 사실상 영국 어디를 가도 PUB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나 또한 주말이 되면 가끔 가족들과 함께 동네에 있는 PUB에 가서 식사도 하고 맥주도 한잔 하곤 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시골의 PUB이다. 하루는 업계의 한 지인이 집으로 초대를 해서 방문을 한 적이 있다.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지역이었고, 구릉에 둘러싸인 초원에 집이 듬성듬성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시골이었다.


우선 그분의 집에 가서 차를 한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고, 오래지 않아 나를 근처의 PUB으로 데려갔다. PUB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보기 시작한다. 시골에 왠 낯선 동양 사람이 왔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나를 초대한 분이 사람들에게 같이 일하는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 지인 분은 나에게 이 사람들 모두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는 동네사람들이라고 설명해 준다. 런던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목축업자, 농부 등 우리나라 농촌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대화와 웃음은 끊이지 않았고 몇 사람은 나에게 와서 말을 건네기도 한다. 마치 친인척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듯한 그 모습들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고, 이 것이 진정한 영국의 PUB 문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와 동네를 거닐 때 가끔 영국의 PUB에 대해 얘기하면서 한국 아파트단지 주변에 영국의 PUB 같은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식사도 하고 술도 가볍게 한잔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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