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색이란 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원래의 타고난 기질의 색을 말하는데 이놈은 아주 고약한 놈이라서 죽을 때까지 절대로 변하지 않으며 버릴 수도 없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화를 잘 참는 편이지만 한번 본색을 드러내면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상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전형적 빨강의 본색을 가지고 있어 가까이서 경험하지 못한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나를 잘 상상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내가 본색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색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목구멍이 포도청인 전쟁 같은 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본색이란 놈은 내가 죽어 흙으로 되돌아가 무채의 백골이 될 때 비로소 사라지기 때문에 색이 없다는 것은 죽은 것과 매 한 가지이니 색깔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자 삶이며 본성이자 개성이 되는 것이다.
사회는 다양한 개성의 스펙트럼을 구성할 때 건강해진다. 삼인삼색, 십인십색 모이면 모이는 대로 다양한 각양각색의 개성이 창조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삶은 본색을 배색하는 색채의 조화론이 필요한 것이다.
각양각색의 본색으로 무질서 한 사회는 지나치게 양극화되거나 편향된 혼란에 빠져 심각한 대립을 야기하게 때문에 조화의 배색이 필요하다. 잘 된 배색은 창조의 하모니를 부조화의 배색은 분열을 일으킨다.
교육이나 소득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본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생활환경 곳곳에서 원색은 원시 밀림으로 떠밀려나고 저채도의 모던컬러가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때론 생기 없는 매너리즘에 빠져 들기도 한다.
다이내믹한 배색조화의 환경은 창조적 사고를 불러오는데, 그 첫 번째는 질서의 원리로 다양한 개성이 유지된 본색조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본색도 일정 테두리 안에서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