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을 후회하니
조금은 후회가 돼
최선의 선택을 한 뒤
최고의 결과를 기대했기에
조금은 후회가 돼
이제서야 까닭을 찾아보니
분명히 확신했다 생각했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니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어쩌면 어쩌면.. 불청객이 찾아와 그 다음 감정을 까먹었다. 부엌에서 나와 주광빛이 쏟아지는 테이블에 앉아 끄적이기 시작했다. Michael Franks의 One Bad Habit 앨범 재킷은 역시나 심상치 않다. 눈썹 위 짧은 앞머리 그리고 귀와 목을 덮는 꼬부랑 거리는 머릿결 슬림한 몸매를 돗보이게 만드는 가슴골 깊이 파인 퍼플 브이넥, 허리춤을 꽉 조여주는 시보리의 롱슬리브 니트. 청바지를 좋아하지만 오늘만큼은 내 눈에 잘 들어오진 않는다.
아침에 반드시 떠오르는 멜로디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어색했다. 어떡하면 좋을까. 아무리 째즈를 들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옷을 훌러덩 벗어두고 욕실로 향했다. 꼬부랑 거리는 머리띠로 눈썹 아래 살짝 덮은 앞머리를 치켜 세운 뒤 안면을 씻겨낼 줄 알았지만, 양치부터 시작했다. 개운하지 않았다. 이별 후 한번 더 이별을 해야 완전한 이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처럼 한번 더 양치를 했다. 개운하지 않았다. 역시 세수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건 줄 알고 안면을 씻겨내려 했지만, 난 머리에 물을 적시기 시작했다. 개운하지 않았다.
쪼그려 주저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가슴에 쳐 내리게 한 뒤 느끼기 시작했다. 느껴지지 않는다. 한 방울 한 방울 느껴지지 않는다. 파도리어카센터미널뛰기러기 플레이리스트는 내 고막을 책임져주지 못했고, 날 위로해 주지 못했다. 소리 없는 날을 되새겨야 할까. 귀찮다. 쪼그려 주저 앉아 눈을 지그시 감은 이 안락함을 순간 틀을 깨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운하지 않기 때문에. 주먹 펴고 일어서 음악을 더 이상 내 고막에서 벗어나게 해야 했다. 개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먹 펴고 벌거 벗은 몸을 일으켜 욕조를 벗어나 도파민 가득한 핸드폰 전원을 오른쪽 두번째 검지 손가락으로 툭 넉아웃 시켰다. 개운하지 않았다. 다시 벌거 벗은 몸을 욕조로 입장시킨 뒤 쪼그려 주저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가슴에 쳐 내리게 한 뒤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까닭을 찾아보니 분명히 확신했다 생각했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니 고통이 따를 수 밖에. 라며 중얼거리기라도 했다. 개운해졌다. 거짓말이다.
오전 10시 11분. 시간을 보고야 말았다. 밥을 먹고 나갈 수는 있을까. 오늘은 조금 더울 거 같은데 반팔을 입어야 하는 게 맞는걸까. 욕실 밖을 나가고 무슨 음악을 들을까. 블루노트? 쏘울? 훵크? 재료 준비는 다 됐었던가. 무선 휘핑기가 날 살리는구나. 무슨 색 양말을 신을까? 페니로퍼 신을까 스웨이드 부츠 신을까? 오늘 바쁠 수도 있으니까 뉴발란스 574 버건디 신어야겠다. 일요일 날 약속 취소하자고 말할까? 그냥 하루 종일 자고 싶은데. 뭐라고 말하지? 아프다고 할까? 모자 쓰고 출근할까? 다이슨 슈퍼 소닉 드라이가 죽이긴 하는데.
오전 10시 20분. 눈을 뜨고야 말았다. 개운했다.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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