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성필은 안대를 벗고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그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달걀 두 개와 초고추장을 꺼냈다. 냄비에 달걀이 완전히 잠길 만큼 물을 받고 끓이기 시작했다. 성필은 달걀이 삶아지는 동안 베란다 빨래통에 입고 있던 잠옷을 던지고, 거실 턴테이블 위에 올려진 레코드를 재킷 속에 넣고, 방구석 부드러운 이불을 개서 탁탁 두 번 치고,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했다. 부엌으로 돌아온 성필은 초고추장을 종지에 담아냈다. 그리고 삶아진 달걀 껍데기를 벗겨냈다. 숟가락으로 달걀을 반으로 갈라내자 덜 익은 노른자가 흘렀다. 그는 초고추장에 반숙을 살짝 찍고선 메마른 입안에 넣었다. 성필은 양손가락을 깍지 끼고, 그 손바닥에 왼 무릎을 안고선 달걀을 오물오물 씹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밤새 잠긴 목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인지, 퍽퍽함 뒤에 오는 후련한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성필은 이 소리가 오늘 첫 대화라 여기며 하루를 시작했다.
성필은 설거지를 마치고 냉기가 흐르는 욕실로 향했다. 따듯한 물로 몸을 녹였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얼굴로 쏟아지는 물이 숨을 들이켤 때마다 코 속으로 스며 들어왔다. 따끔거렸다. 내뱉으면 시원했다. 따끔거렸다가 시원했다. 점점 녹아져 내리는 가슴살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잡생각 - 가슴팍은 팔 굽혀 펴기를 해야 탄탄해질 테다. 탄탄한 가슴은 힘을 팍 쥐었을 때 화이트 칼라 셔츠의 단추를 터칠 것이다. 떨어진 단추를 주섬주섬 줍더니 교복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교복을 입고 바구니가 달린 짙은 갈색 프레임 자전거를 끌었던 그녀의 이름은 무엇일까 - 이 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생각꼬리 잡기였다.
곧이어 성필은 쪼그려 주저앉아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가슴에 쳐 내리게 한 뒤 느끼기 시작했다. 꼬리 잡기는 아주 잠깐일 뿐인 섬광의 틈새로 평온이라는 어둠 속의 빛이 보이자 끝이 났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이곳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아챘다. 온몸을 적시는 따듯한 물이 시간을 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름답고 순수한 평범한 일요일 오전을 실종시키고 말았다. 성필은 번쩍 눈을 뜨고 찬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씻어 내었다. 바짝 정신이 든 그는 탁상의 둥근 거울을 바라보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성필은 하얀 조약돌 적어도 스무 알 정도는 꿰매져 있는 팔찌를 서랍 속에서 보았다. 하늘색 두 송이, 노란색 한 송이의 후리지아가 조약돌이 건너게끔 징검다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성필은 이 팔찌를 차고 싶은 날엔 이에 맞는 옷을 골라 입었다. 그는 속이 훤히 비칠 것 같지만 부끄러움보다는 팔찌와 어울리겠다는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이 더 앞섰다. 하늘색 리넨 셔츠다. 성필은 승모근까지 덮인 머리칼이 곱게 접힌 카라에 닿으면 신경이 쓰였지만, 팔찌와 어울리겠다는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이 더 앞섰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며 확신에 찬 미소를 머금고 두꺼운 면 소재의 블랙 테이퍼드 팬츠를 더해주었다. 수아에게 선물 받은 통풍이 확실한 하늘색 양말이 옷장에서 보이지 않는다. 욕실 문 앞 빨래 바구니에 숨겨져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성필은 두 손가락으로 양말을 꼬집어 내곤 오늘까지만 신기로 하였다. 구두는 새까맣다. 하얀 먼지가 살짝 쌓여 있었다. 성필은 발로 쓱 닦아냈다. 카키색 사파리 재킷의 허리춤을 오른손으로 부여잡고 밖을 나섰다. 곧장 다시 들어왔다. 성필은 무릎을 꿇은 채 방으로 기어들어 가서 차 키까지만 챙기고 완벽하게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