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필은 입김이 보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 삼촌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성필은 왼 손바닥으로 오른쪽 팔뚝을 쓸어내렸다. 날이 꽤 춥네요. 성필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삼촌은 많이 선선해졌어,라고 답했다. 안 추우셔요? 제법 추운 온도임에도 선선하다는 삼촌의 말에 놀라며 성필은 물었다. 그러니까 선선하다고. 허허. 성필은 곧장 선선하다 의미를 검색해 보았다.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늘하다. 체감 온도 인사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성필은 대화만 통했으면 됐다고 생각했다. 검색은 부질없었고.
보컬 없는 피아노 재즈가 카페 산조에서 흐르고 있었다. 십자 우드톤 창에 투영된 사람들은 피아노 선율이 울릴 때면 그들만의 언어로 사라 본, 에타 존스라는 새처럼 지저귀기 시작했다. 그냥 아름다웠다. 치아바타 샌드위치가 성필 앞에 도착했다. 성필은 초록빛 머금은 루콜라 다섯 가닥이 먼저 기웃거리길래 앞니로 톡톡 씹어내었다. 샌드위치를 두 손으로 잡곤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토마토 하나가 접시 위에 톡 떨어졌다. 토마토의 씨앗과 과즙이 듬뿍 가두어진 것이 새까만 밤하늘에 푸르스름한 오로라 한 줌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그냥 아름다웠다.
오후 네 시에 성필은 따듯한 필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달걀 껍데기 위를 걷는 듯한 트럼펫 소리를 내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모습을 건조하면서 섬세하게 그리고 있었다. 한 여자가 쭈뼛거리며 성필에게 다가와 마일스를 좋아하냐며 용기 내듯 물었다. 성필은 그녀의 눈을 마주치고서 오른쪽 팔을 쓰다듬고는 예..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버건디 브이넥 스웨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자도 수줍은 듯 오른쪽 팔을 쓰다듬으며 취향을 밝혔다. 루이스 암스트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성필은 건조한 목소리로 루이스가 아니라 루이입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어차피 부질없음을 알았다. 여자는 같이 앉아도 되냐고 성필에게 물었다. 성필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수아가 없는지 눈짓으로 확인하곤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성필은 여자의 깊은 쇄골에 눈길이 갔다. 여자는 계속 루이스라고 말했다. 성필은 루이든 루이스든 생각했다. 여자의 도톰한 입술에 빠져들었다. 여자가 머리를 대충 넘기기만 해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해거름 무렵 여자는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갈 채비를 하러 갔다. 성필은 창가에서 굶주린 새처럼 입을 벌린 채 카페 앞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의 도움닫기와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한 한 마리의 새. 생각한 것보다 바람은 고요하지 않았고, 따듯할 거라 생각했던 그 바람은 오히려 차갑게 그의 살갗을 찌르고 있으니. 날갯짓을 하는데 예상보다 많은 힘을 쥐고 있었기에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쉼이 필요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정지된 상태로 날개만 펼친 채 바람, 그러니까 자연에 몸을 맡겼다. 황홀하다.
성필은 창 밖의 새가 검은 점으로 보일 즈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고향 친구 승용차가 주차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카페로 들어선 친구는 성필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휙 지나쳤다. 버건디 브이넥 스웨터를 입은 여자 쪽으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곤 친구가 여자의 왼쪽 어깨를 톡 치며 놀라게 했다. 그녀가 웃었다. 성필은 황망히 고개를 돌렸다. 선선한 겨울밤이 느릿하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불타는 해거름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