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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나를 말해주는 유일한 수단일 때

by 메이다니

프리랜서. 겉으로 보면 굉장히 있어 보이는 단어다. 자유롭고 유연하고, 정해진 틀 없이 자신만의 시간을 산다는 인상. 실제로도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 살아보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프리랜서란 결국 누군가가 ‘써줄 때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다 보니, 일을 하고 있을 때만이 나도 당당하게 “프리랜서예요”라고 말할 수 있다. 일이 없을 때 나는, 그냥 백수에 불과하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 없이 존재하는 하루는 때로 무게감이 너무 크다.

20대 초반,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프리랜서라는 말이 꽤 멋져 보였다.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현장을 다니고, 낯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자유와 도전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꽤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일이 없을 때, 나는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랐다. 단순히 “요즘은 쉬고 있어요”라고 말하기엔 내 안에서 이상한 불편함이 자꾸만 피어올랐다. 그 막막함 끝에서 내가 붙인 이름이 다시 프리랜서였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보다는 어떤 일을 했었다는 이력과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나 스스로 자꾸 그 단어를 꺼내 쓰게 되었다.

‘일’이 나를 말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슬픈 일이다. 일이 없을 때 나는 마치 존재감이 줄어든 사람처럼 느껴졌고,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을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천천히 번져왔다. 그래서 요즘은 그 유일한 수단을 꼭 ‘일’로 단정짓지 않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 어떤 날은 글을 쓰고, 어떤 날은 나만의 루틴을 실험해보고, 어떤 날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 중 일부는 내 시간을 기록하는 일이 되고, 일부는 아무 성과 없이 사라지는 하루가 되지만, 그래도 그것조차도 결국 프리랜서라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는 걸 점점 받아들이게 된다.

프리랜서의 장점은 어떤 직업으로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자유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귀한 기회다. 하지만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이 일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정해준 레일 없이 살아간다는 건 때로는 찬란하지만, 때로는 너무도 외롭다. 내가 쉬는 날, 남들은 연차를 쓰고 있다. 내가 일 없는 날, 누군가는 다음 주 출근을 준비한다. 그들의 안정감이 부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조직이 주는 든든함, 함께 일하는 동료, 다음 월급일이라는 확실한 예고. 프리랜서에겐 없는 것들이다.

10년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지금, 나는 여전히 이력서를 낸다. 6개월째, 부지런히 메일을 보내고 결과를 기다린다. 그 중 대부분은 답이 없다. 때로는 무시당한 기분, 때로는 아직도 나를 소개하기 어려운 현실이 겹쳐진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고민한다. 나는 오늘 어떤 자유를 선택할 것인지. 이 삶이 매번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언젠가, ‘일’이라는 수단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조용히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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