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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묘 Oct 06. 2024

"고맙습니다."

“목욕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방수 앞치마를 두른 봉사자 두 명이 침대 앞, 뒤를 잡고 목욕실로 들어갔다. 목욕실의 양쪽 벽에 붙은 난로 덕분에 공기 전체가 후끈했다.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던 다른 봉사자들이 침대를 에워싸며 환영인사를 건넸다.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다. 비쩍 마른 몸을 거친 주름으로 뒤덮고 누워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봉사자들의 밝은 눈빛이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잠깐이나마 목욕탕을 갔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희미해진 기억 속, 엄마 손에 이끌려 때를 밀던 나를 봤다. 온탕과 냉탕을 수영장 삼아 물놀이 하며 열 손가락 끝이 쭈끌쭈글해 지곤 했다. 


“이서은님, 이제 목욕 침대로 이동하실 거예요. 저희가 빠르게 옮겨 드릴게요. 편하게 누워 계시면 돼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가 누워 있는 병실 침대를 목욕 침대 옆으로 붙였다. 몸 한쪽에 슬라이더를 밀어 넣고는 봉사자들이 합을 맞췄다.


“자, 하나, 둘, 셋!”


봉사자들의 팀워크를 보니 그동안 얼마나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왔을지 그려졌다. 


“이 침대가 욕조처럼 변신할 거예요, 혹시 춥지는 않으세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기계 소리가 작게 나더니 침대 옆이 둥그렇게 높아졌다. 마치 욕조에 누워 있는 듯했다. 이내 신속하게 환의를 벗기며 목욕이 시작되었다. 양쪽 벽에 붙은 샤워기에서 내뿜는 물소리가 목욕실을 가득 채웠다. 중간중간 진행되는 상황에 대한 짧은 안내만 있을 뿐, 말 한마디 없이 몸을 씻겨 주면서도 봉사자들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병실에서 눈을 뜬 이상한 날들이 계속된 이후, 몸에 물이 닿도록 씻는 건 처음이다. 처음엔 따끈한 물이 찰랑거리며 몸을 녹여낸다고만 생각했다. 중간에 눈을 뜨고 목욕실 광경을 보고서야 나의 몸을 녹여낸 게 물이 아니었던 걸 알았다.


뿌연 물안개 속에서 나는 하얀 커버를 덮고 누워 있었다. 얇은 천 아래로 몸을 씻기는 봉사자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칠었던 살갗에 닿은 손이 마음까지 씻겨 주는 것 같았다.   


물안개 속 흐릿해진 봉사자들의 눈 언저리엔 땀이 송골 맺혀 있다. 방수 앞치마 속 하얀 셔츠가 땀으로 짙어졌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내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도 신속하게 씻기는 작업이 쉽지 만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넋 놓고 보다 보니 어느새 목욕이 마무리되어 갔다. 


“병원이 많이 건조하죠? 끈적이는 게 불편하지 않으시면, 바디 로션 발라드려도 될까요?”


마무리하던 봉사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디 로션을 바르는 손이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은은향 꽃향이 좋았다. 누구 하나 미사여구를 붙이며 설명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 같았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말해주고 있었다. 목욕을 앞두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창피했다.


목욕이 끝났다. 새 시트로 교체해 둔 나의 병실 침대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시 602호로 돌아왔다. 마치 며칠을 여행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듯했다. 


“여보, 다시 시집와도 되겠어. 진짜 은방울꽃처럼 예쁘다. 목욕하느라 고생했어, 잘했어.”


말끔해진 나를 쓰다듬으며 반겨주는 남편이... 좋았다.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발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며 말했다.


“아이고, 고생 많았죠? 정말 감사합니다.”


남편이 봉사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서은님, 보호자님, 오늘도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남편의 인사에 봉사자들이 답했다. 그리고 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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