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일 뿐이야
아픈 게 팔인지 어깨인지 애매한, 옷 갈아입을 때마다 헉 숨을 들이켜는 고통에 조금 쉬었다가 다시 수영하기를 반복하길 한 달쯤, 그러는 사이 달력의 마지막 장이 넘어가고 새해가 되었다.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친구와의 통화가 있었다. 물겁쟁이에서 시작하여 2년 넘게 수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수영을 추천하며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라던, 바로 그 친구다.
팔이 아프다는 얘기에,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려주며 쉬란다.
"쉬다가 괜찮아지면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한 달 전, 지난해의 12월을 맞이할 때, 한 해를 돌아보는 아쉬움 속에서도 '그래도 수영 하나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부심을 느꼈었다. 그런데 새해가 된 지 이제 겨우 며칠인데, 야심 차게 희망찬 계획을 세워도 모자랄 판에 그만둘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연말연시로 어수선했던 일주일간 수영을 쉬다가 새해 첫 월요일, 통증이 조금 잦아들었나 싶은 생각에 수영장에 나갔다. 야심 차게 새해 첫 수영! 단, 아픈 걸 생각해서 열심히 말고 슬렁슬렁, 대충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물속 세상에서 대충이 가능 키나 한 말이었던가. 물속에서 움직임은 공기 중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으니, 물을 밀어내기 위해서는 '힘껏'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팔에 자동으로 힘이 들어가고 물과 사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의사의 선고가 두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딱 잘라 '수영 금지'를 선언할까 봐 차일피일 병원 가기를 미루고 있었나 보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아프실 것 같은데요? 염증이 많네요!"
초음파를 보면서 의사가 말했다. 슬렁슬렁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던 내 생각을 쏙 들어가게 하는 말이었다. 어깨에 주사를 맞으면서 '당분간 수영 금지, 코어 운동 먼저'를 거듭 주지시키는 의사는, 괜찮다고 바로 수영을 다시 했다간 3개월 내에 다시 병원에 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거북목과 라운드숄더인 나에게 어깨충돌증후군이라는 병명은 내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는 '더 이상 수영에 접근금지!'라고 빨간 불을 웽웽 돌리고 있었다.
전문가의 경고를 듣고서야, 결국 나의 새해 첫 다짐은 '수영 중단'이 되고 말았다. 의욕이 솟구침에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이라니. 새해 벽두부터 이런 기분이라니. 수영을 다시 하려면 코어근육을 만들기 위한 다른 운동을 먼저 해야 할 모양인데, 내가 과연 다른 운동을? 여전히 나 자신이 못 미덥다.
여기까지 쓰고 잠깐, 나의 글쓰기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하나 있는데, '못 미덥다'와 같은 단어를 쓰고 나면, 자신감 없이 침울한 내가 보여 응원 한마디를 던지지 않고는 글을 마무리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나를 제 3자의 눈으로 보고, 남들을 응원해 주듯이 나를 응원하게 되는 마법 같은 힘!
내가 수영을 이렇게 즐기게 될 줄 알았던가!
못할 거라고, 난 의지가 약하다고,
미리부터 선을 그어놓고 얕잡아봤던 내가
점점 열정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겪어보지 않았던가!
지금 알고 있는 내가,
항상 이대로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잖아?
고래를 꿈꾸었지만, 전략적인 일보 후퇴다. 수영 1막이 끝나고 커튼이 내려졌다. 2막이 언제 시작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막간을 이용하여 주위를 좀 환기해야겠다. 공연 중 인터미션은 휴식을 주기도 하고, 감상을 되새김질하기도 하며, 클라이맥스를 제대로 감상할 새로운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다. 새로운 문을 여는 것 만이 시작은 아니다. 문 하나가 닫혔으니 이것 또한 새로운 시작이다. 나는 또 어떤 문을 만나 당겨 열게 될까? 그다음 문을 열 때는 분명, 주저함은 덜하고, 용기는 한 스푼 얹게 될 것이다. 그 한 스푼 분량만큼의 용기가 수영 1막에서 내가 획득한 다이아몬드다. 내 마음속 의욕 넘치는 고래는 잠시 워워 하기로 하고, 고래의 꿈은 시즌2로 예약해 두기로 한다.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