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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Aug 09. 2023

언제나 평등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 강남구 압구정동

  “예진아, 내일 압구정동 한번 가볼래?” 금요일 저녁, 설거지를 마친 연택이 스텔라 맥주 한 캔을 김치냉장고에서 꺼내면서 묻는다.

  “갑자기? 압구정은 왜?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예진이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어, 압구정3구역  설계공모투표가 내일이래. 그냥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떡도 준다는데...”

  “싫어. 우리 살집이나 궁금해해!”

  “어, 맞다... 그래야지...”

  “그때 부산에서 기차 타고 올라오면서 얘기했었잖아!”


  그랬다. 2주 전 주택이 형을 만나서 1박 2일간의 부산임장을 마치고 수서로 올라오는 SRT362에서, 연택은 ‘재개발 천재’에 몇 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다주택자 주택이형 자산의 실체를 알게 된 후, 질투심을 넘어 순간적으로 경외로운 내면의 끓어오름을 느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더 이상은 안된다고. 자신을 환경 속으로 집어넣는 일이 필요하다고 다짐했다.


  “응, 알아! 그래서 우리 서울에 투자물건 찾으면, 그때 전세로 동탄1로 옮기기로 했잖아. 그전까지는 내가 여기서 평택까지 출퇴근하면 되고.”

  “근데 오빠 진짜 괜찮겠어? 내 집 없이 사는 거? 아주버님 때문에, 그냥 욱해서 그런 거 아니고? 오빠는 집 한 채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던 사람이 자나? 내가 막 그러자고 했을 때, 세상에 ‘집 없는 부자가 어딨냐?’ 고, 나한테 막 뭐라고 그렀었잖아. 나야 주민등록 초본이 5장이 넘어갈 만큼 이사를 많이 다닌 사람이지만, 오빠는 안 그랬던 사람이니까.”


  또, 그랬다. 나의 초본은 한 장이면 끝난다. 영등포구 남서울아파트, 신길6동 단독주택, 대전 크로바아파트, 그리고 이곳 e편한세상경기광주역. 오늘따라 예진이 팩폭을 여러 번 날린다.

  “오빠, 그래서 말인데, 전세 살면서 2년마다 옮겨 다니고, 투자로 돈 벌자는 건, 지금도 그건 유효한 거지?”

  “그럼 그럼. 월세도 갈 수 있어! 우리 서울에 들어가야지! 다산 정약용 선생도 서울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래서 서울이야.. 지금 못 들어가면, 평생 못 들어갈 것 같아. 서울에. 우리도 이 광주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몰라...”




  “오빠, 라일락이는 진짜 왜 죽었을까? 꽃도 이쁘게 피고 건강하게 살 것 같았는데...”

  “저 기다란 토분이 문제인가? 물이 잘 안 빠지나? 저 화분에서 1년 새에 벌써 세 놈이나 죽어 나갔잖아. 천혜향, 야레향, 라일락... 딴 놈들은 잘 살고 있는데 왜 유독 이 화분에만 오면 죽는 거지? 왜지? 이 집이 얘 집이 아닌가... 얘한테도 맞는 집이 있겠지? 사람들도 그런 게 있겠지?”


  예진은 집을 많이 옮겨 다녔다. 돌이켜 보면 무언가 맞는 집이 있었던 것 같아, 풍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나고 나면 무언가 잘 풀렸었던 집. 좋은 일만 일어나는 어둡지 않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차있었던. 반면에, 집은 좋은 듯하고 살기는 편해도, 누군가 아프고, 무언가 잘 안 풀리던 집도 있었다. 압구정동처럼, 결국 라일락처럼 한철 피고 바짝 말라죽어 그 화분을 나와야 하는 것처럼.


  “그니까 우리 전세 살더라도, 우리한테 잘 맞는데, 잘 찾아봐야 돼. 아무 데나 가면 안돼. 그런 점에서 이 집은 참 좋긴 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좋아, 녹색이 들도 쑥쑥 잘 자라고. 2층이라 지기가 좋은가 봐. 물론, 유칼립투스, 라일락... 몇몇 우리가 죽인애들 빼고…”


  연택이 분갈이 노동요를 대신할 유튭을 찾으려고 애플TV로 유튜브를 켰는데, 시리가 우리 얘기를 들었는지, <서울시, 압구정3구역 설계사 선정 투표에 "무효" 제동>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떴다.


  “오~ 벌써 결과 나왔네. 근데 왜 무효야?”

  서울시가 지난 7월 11일에 현행기준을 초과하는 용적률(360%)을 제안한 희림건축을 ‘시장 교란 행위’로 규정하고 사기미수, 업무방해, 입찰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했음에도, 압구정3조합은 희림건축을 설계업체로 선정했다. 서울시 대변인이 “낚시성 설계안을 가지고 선의의 시민에게 피해를 주면서 원칙을 흐리는데 대해...”라는 영상이 흐르고, 결론적으로는 서울시 신통기획의 용적률 최대한도인 300%를 넘어선 360%의 설계안을 제시한 희림건축이 선정됐다는 내용이다. 또한 희림건축은 ‘소셜믹스’를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았다.


  “거봐. 그래서 난 압구정동에 살기 싫어. 사람들이 안하무인이야, 신통이고 나발이고, 마치 자기들이 법 위에 있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잖아.”

  예진이 마사토와 피트모스, 질석과 분갈이흙을 능숙하게 섞으며 무심히 얘기한다.

  “조합원들 중에서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 서울시는 우습고, 정치권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야. 근데 그래도 그렇지. 그건 아니잖아.


  저기 나오네, 떨어진 해안건축은 희림건축 대비 약 6조 원의 재산가치감소를 가져오고, 조합원 세대 평균 약 15억 원이 감소한다고. 반면 희림건축은 전용면적이 늘어나는 재건축이니까. ‘조합원님들의 자산가치 극대화’ 비전을 보여주는 희림이 된 거네.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니까.”

  “그러네. 조금 놀랍긴 하다. 서울시가 고소까지 한 마당에 희림을 선정하고.”


  “오빠, 솔직히 말하면, 난 저 커뮤니티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 내가 압구정이 싫은 건, 우리 가족이 거기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냐. 난 그들의 기득권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야. 나 지난번에, 중학교 친구들 만났었잖아. 혜선이가 청첩장 준다고. 옥수파크힐스에 부모님이 집 마련해 줬다던. 기억나? 남편이 검사거든. 근데 걔네 언니 결혼할 때,  부모님이 엄청 반대했어. 집도 안 해주고.  남들 돈 계산이나 해주는 회계사라는 이유로. 혜선이 아버지가 MB시절에 광주지검장 하셨었거든. 그래서 그 집은 돈보다 권력이 최우선인가 봐.

  혜선이 중학교 때 83동 살았으니, 압구정3구역 맞네. 혜선이 아버지가 용적률 높일 수 있다고, 서울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고도 남을 듯하네. 근데, 난 그런 권력 가득한 부모님도 없고, 부모님 아래서 나 스스로 이뤄놓은 것도 없고, 그러니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싫은 거라고. 알아?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아버님 대전 크로바아파트 공무원 커뮤니티랑은 차원이 다른 곳이라고!”

  

  연택이 분갈이할 제주하귤의 뿌리를 고르다 멍하니 예진을 바라본다.

  “...”

  “내가 괜히 흥분했나 보다. 미안.”

  “아냐. 이해돼. 충분히 그럴 거라는 거.”

  “그럼, 얘기 쪼금 더 해도 돼? 나 맥주 좀 더 줘. 웅… 근데 분갈이는 언제 하지?”

  “응, 이런 날이 언제 또 오겠어. 예진이 입으로 하는 압구정 스토리라니!”

  연택은 분갈이용 3M 장갑을 벗고, 예진이 좋아하는 버드와이저 맥주를 따라준다.

  “오빠~!! 앍!! 지렁이닷!” 뽀얀 연분홍의 도톰한 지렁이는 라일락 뿌리가 새까매져버린 흙 속에서 꿈틀 인다. 애플TV에서는 “2년 만에 또 집사기 시작했다. 부동산 집값 이렇게 된다”라는 썸네일에 너나위 얼굴이 떠있는 월급쟁이부자들 영상이 자동으로 플레이된다.

  “요즘 부동산시장이 다시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나 봐.” 연택이 지렁이를 한쪽으로 빼며 “시장이 조금씩 돌아서고 있는 것 같긴 해.”라고 말한다.

  예진의 머릿속엔 아직 압구정3구역의 설계사 공모 영상이 남아있다.


  “근데 아까 그거… 나도 그들이랑 다를 건 없는 것 같아. 나도 희림을 선택할 듯. 용적률 말고도 희림은 ‘임대주택 없는 조합원 단지’를 제안했잖아. 대 놓고 ‘소.셜.믹.스.’는 없다고. 신통에는 임대주택의 고품질화와 오세훈표 적극적 소셜믹스를 밀어붙이고 있는데도 말이야.”

  “나도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무작정 섞는다고 믹스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따로 빼면 길막하고 그러니까...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임대가 많이 들어가 있으면 가격 안 오른다고 얘기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면서도, 막상...”


  “오빠보다는 내가 더 구별 짓기 좋아하는 사람 같아. 그냥 몸에 배어 있는 건가? 나도 모르게 학습된 건가?

나 신구초등학교 다닐 때 생일파티는 갤러리아 앞에 <맥도날드 1호점>에서 했어야 했어. 구정중학교 때는 호텔 뷔페에서 하는 게 유행이었고. 그래서 역삼동에 <라마다 르네상스>나, 신사동 <리버사이드 호텔> 뷔페에서 생일파티 했었어. 난  지금 래미안퍼스티지 건너편에 <팔래스 호텔>이라고 있었거든. 거기 꼭대기층에 뷔페식당에서 난 생일파티 했었어. 1학년때. 그게 마지막이었네.


  아, 아니, 이 얘기하려는 건 아니었고, 얼마 전에 그 <팔래스 호텔> 재건축 분양광고 기사 뜬 거 봤어? 난 유튜브에서 봤는데, 사과문 올리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언제나 평등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의 설계로 단 73실만 짓는 <더 팰리스 73>. 100억~400억 분양가인 두 동 짜리 고급 아파트로 청담 <PH129>에 이어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자본주의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주거의 불평등.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던 예전의 한 아파트 광고는 오히려 귀엽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소셜믹스’를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구별 짓기’에 나선다.


  “오빠, 그거 알아? 근데 나도 그런 세상을 꿈꿔. 나 돌아갈 거야. 서울로, 상급지로, 더, 더, 더 좋은 곳으로. 작년인가 부동산 공부하면서 마음먹었어. 돌아갈 거라고. 그래도 압구정은 싫어. 맘 편한 데로 갈 거야. 내가 이름 붙인 게 ‘오레곤프로젝트’거든. 언젠가 내셔널지오그래피 다큐멘터리 봤는데, 북태평양에서 자신이 태어난 오레곤 개울로 돌아오는 연어들처럼, 나도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거야. 서울로. 그니까 오빠도 공부 열심히 해. 두고 갈 순 없으니까.”

  “오레곤프로젝트... 알았어. 그럴게. 나도 델꼬가.”


  “나, 고1 때 기숙사에서 이 노래 처음 듣고 펑펑 울었었어. 그땐,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한 20년 지나서 들어봤더니 좋더라. 그냥 내 인생 같아서.”

  2000년, 서울과학고 기숙사에서 빠른 랩 속에 이 가사는 예진의 귀에 꽂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압구정동에 살고 있었으니. 그 유명한 ‘빵순이~ 빵순이~’의 “Run To You”가 들어있던 DJ DOC의 5집 앨범 중 “D.O.C Blues.”


내가 사는 곳은 압구정동, 주소는 신사동 653-1번지

잘 나갔던 시절. 잘 나가던 그때가 좋았지.
One for the money Two for the money
뭐니 뭐니 해도 money 돈이 최고지

세상만사가 새옹지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어

세상 사는게 왜 이렇게 힘들지 
내 인생은 왜 이러지 눈물이 핑돌지 
따뜻할 때도 있지 추울때도 있지 
때론 울지 때론 웃지 
그렇게 살지


  연택과 예진은 3M 장갑을 끼고, DJ DOC의 노래가 흐르는 e편한세상경기광주역 거실에서, 각자의 맥주를 홀짝 거리며 분갈이를 한다. 상토를 깔아주고, 마사토를 깔고. 둥근 장식돌도 올려놓는다. 새 집으로 분갈이 해준 제주하귤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또 주말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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