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코창작기금선정작
조희
흰 눈이 슬픔을 덮을 때
마당가에 있는 나무에는 석류가 매달려 있다
도무지 쪼개질 것 같지 않은
나의 시작은 단단한 껍질에서부터였을까
참새 떼가 겨울빛을 몰고 날아다니고
석류가 오래된 생각을 털며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다
석류잼을 만들기 위해
칼을 들고 서 있을 뿐인데
나는 석류잼을 만든다
석류의 붉은 방들을 알알이 두드리면서
지난여름 허물을 벗기면서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둔다
서로 생각이 달랐던 너와 나
우리의 계절이 벗겨질 때까지
석류의 피와 살이 루비, 루비라는 이름으로
칼의 가장자리를 지나는 동안
쪼개진 내 마음에도 붉은 석류알들이 쏟아진다
처음의 기도와 바람의 맛과 어긋났던 말과 고마워라는
너의 마지막 고백이 뭉개지고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설탕을 넣고 석류즙을 끓인다
창밖에는
아직도 흰 눈이 겨울나무를 덮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