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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by 조희

터널


조희


하나의 터널을 지나면

또 하나의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주먹 쥐고 태어나

주먹 펴고 사라질 때까지

한순간에 다리가 붕괴되고

한순간에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병실에서

내 안의 터널을 지날 무렵이었다

사고로 무릎이 부러져 엎드리지도 못하고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을 때

어디선가 터널 안으로 돌멩이들이 날아왔고

하나의 돌멩이가 가슴속에 들어와 굴러다녔다

다시 흙을 털고 일어나 걸을 수 있는지

내 돌의 무게에만 집중하다가


비로소

더 큰 돌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서 멀어지는 사람들, 사람들

터널의 끝은 환했다

터널 속으로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빛이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기도 했다

돌이 크고 무거운 데도 잘 흘러가는 것은

너무 많이 울고 난 뒤에 생기는 부레

커튼을 내린 병실에서 폭우가 내릴 때까지

누운 채로 물고기 잠을 자고 싶었다


기억을 붙잡고 잠들지 못하는 밤

누군가 돌은 흘러가게 해야 한다고 했다

부서지거나 쪼개져야만 가벼워지는 줄 알았던

돌을

잔물결 바라보듯

바라보고, 바라보고

늘어지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나는 흔들리는 수초를 간신히 잡고 꼬리를 흔드는 물고기

잡은 것을 놓기 위해

팔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붕대를 친친 감은 무릎도 물살에 맡겨본다


기억을 폈다가 접었다가

돌을 뒤집었다가 던졌다가

눈을 서서히 뜨자

내 안의 돌이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터널은 빠져나갈 것이다

또 다른 터널을 지나가야 하니까

울음이 다시 솟구치듯

몸속 물은 계속 흘러야 하니까


터널입구, 2.jpg


글자터널사진 한글박물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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